주말을 동탄에서 보냈다. 손녀들과 즐거운 시간이었다.
일요일 오후 1 시쯤에 부산행 기차를 타면 저녁 줌 스터디를 소화하기에 충분하다. 딸은 아쉽다며 4시경 기차로 가라고 한다. 두 개의 표를 예매한 후 나의 컨디션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나도 두 손녀와 함께 노는 시간의 달콤함에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일정이 조금 빠듯하지만 일요일 저녁 스터디 참석 시간 맞추기에는 큰 무리는 없을 듯했다.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진 딸은 오랜만에 아파트 내에 있는 주민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갔다. 내가 있음으로 해서 딸이 자신만의 오롯한 시간을 가지는 게 좋았다. 큰 손녀와 자전거를 타며 놀이터를 돌았다. 아파트 꽃밭의 자주달개비 꽃도 보고, 모과나무도 살펴보았다. 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자전거를 탄 손녀와 함께 걸으며 그늘을 찾아가며 아파트를 돌다가 헬스장의 창문을 통해 딸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날이 무더워 손녀의 코 끝에 땀이 송송 맺히는데도 즐거워한다. 딸 부부의 바쁜 일정으로 손녀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인지 한 껏 신났다. 그늘에서는 시원한 바람도 가끔 느낄 수 있었지만 햇빛 가득한 양지에서는 작열하는 태양이 그대로 느껴진다. 뜨거운 햇빛을 양산으로 가리며 종종걸음으로 자전거 탄 손녀와 동행했다.
놀이터 운동기구들을 이용해 손녀가 매달리기를 해 보았다. 5살 손녀는 키가 107 Cm임을 자랑하며 제법 오랜 시간 매달리기를 한다. 팔힘이 많이 길러졌다. 손녀가 이렇게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고 있음이 감사하다.
몇 시간의 귀가시간을 늦추어 딸과 손녀와 내가 함께 행복할 수 있으니 좋았다.
그런데...
4시 경의 SRT를 동탄에서 타자 마자 오후의 나른함에 낮잠에 곯아떨어졌다. 안내방송이 들려오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대전쯤에서 기차가 멈추었다. 한 경부선 고속열차의 선로 이탈사고로 모든 고속철이 멈추었다고 한다. 선로복구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 예상하기 힘들다는 안내방송이었다.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은 걸릴 듯하다는 역무원의 안내에 밀린 글들과 영상을 보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복구시간이 길어지면서 기차가 꿈쩍도 하지 않으니 조금씩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비교적 정확한 시간에 운행되는 기차이기에 이런 불편함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녁 줌 약속시간 맞추기도 힘들어졌다.
동대구와 부산사이에서 사고가 일어났기에 그 구간은 고속철도가 아닌 일반 철도로 우회해서 부산으로 향한다고 했다. 울산에 내려야 하는 승객들은 정차하지 못하여 부산까지 가야만 한다는 안내방송에 여기저기서 불편함을 호소했다. 고속철이 아니라 산둥산둥 완행열차를 탄 듯 느리게 부산을 향했다. 고속철도의 속도에 익숙해진 나는 느린 속도에 지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운행되어 도착지를 향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인간이 만든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무력감도 함께 들었다.
AI 가 지배하는 현재와 미래는 미세한 오류에도 대혼란을 가져올 수 있음이 상상이 되었다.
딸과 남편의 카톡이 연신 울리며 안부를 묻는 대화가 오갔다. 밤은 깊어가고 9시 조금 지나서야 겨우 부산에 도착했다. 두 시간 남짓 소요되던 시간이 5시간이나 걸렸다. 그래도 일단 부산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기차에 내려 역사를 통과하는데 사람들로 가득 차 아수라장이었다. 줄줄이 지연된 열차운행으로 사람들은 바닥에 자리 잡고 앉아 기차 운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캐리어를 끌고 겨우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로 역사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크지 않은 선로이탈 사고로 이 정도로 혼란이 야기되는데, 만약 전쟁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송두리째 흔들리겠나라는 상상이 이어졌다.
역사 주변은 차량들로 가득 차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3시간 전부터 역 근처에서 기다리던 남편과 드디어 함께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기나 긴 주말 오후와 밤이었다. 새삼 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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