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휴가는 강원도에서 보냈습니다. 영월을 거쳐서 정선에서 머물면서 휴식을 취했어요.
강원도는 저에게 언제나 아련함과 뭉클함을 함께 가져다주는 곳입니다.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생후 얼마되지 않아 강원도로 이사했습니다. 제 어린 시절 추억들은 강원도 산골짜기의 원주가 주 무대입니다. 그러니 강원도는 제 고향인 셈인 게죠.
아버지가 월남전 참전하실 즈음에 외갓집이 있는 부산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부산사람이 되었고요.
설레는 마음으로 강원도로 향한 첫날, 사위가 영월에 들러 공연을 먼저 보자고 했습니다. 단종의 능인 장릉의 경내에 야외 뮤지컬공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는 오래전에 가 본 적이 있지만 장릉은 처음입니다. 단종의 묘는 작고 소박하게 낮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단종은 삼촌인 세조에 의해 유배되고 왕위에서 축출되고 무참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강에 버려졌으며 시신을 찾으면 3대를 멸하겠다는 세조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엄홍도라는 사람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비밀리 능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단종을 품은 영월은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곳이 된 것입니다.
장릉에서는 상설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에 창작뮤지컬이 열리고 있습니다. (4월~11월)
단종의 슬픈 이야기들을 익살스러운 낮 도깨비들이 당시의 상황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뮤지컬입니다. 세조의 권력을 향한 눈먼 잔혹함과 어린 왕으로서 단종이 겪어야만 한 불운한 무력함 등 무겁고 슬픈 내용의 역사를 도깨비들의 춤과 노래로 잔잔히 풀어냅니다.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가 뛰어나고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여 한 시간 남짓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5살 첫째 손녀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모두 관람할 정도로 흥미진진했습니다. 경내의 야외 공연이라 둘째 손녀는 유모차에 태워서 왔다 갔다 하며 가족들 모두가 뮤지컬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큰 기대 없이 가족모두에게 추억의 시간이 되겠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했는데, 세종문화 회관에서 볼 수 있는 고품격 고퀄리티의 작품이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배우들이 땀을 흘리며 야외에서 열심과 진심을 다해 공연하는 모습이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영월의 창작 공연팀인 '극단 시와 별', 전통음악을 계승하는 풍물팀인 '터를 일구는 사람들'의 멋진 공연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감상평을 쓰고 나서 정성스러운 선물까지 받게 되니 가족모두 엄청난 행운을 잡은 듯했습니다.
멋진 공연을 준비해 방문객에게 큰 감동을 준 영월이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가슴에 새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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