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감사합니다.

비 오는 날엔

아리아리짱 2023. 4. 7. 05:42

 
집에서 학원까지는 걸어서 40 분 걸린다. 나는 어느덧 20 년 가까이  같은 길을 걸어서 일터로 향한다.
오후 2 시쯤 출근길을 나서면 도로가에 할머니 몇 분이 난전을 펼치고 있다. 각종 나물들과 조개 등을 한 대야(다라이)씩 앞에 두고 버스 정류소 가까이에서 옹기종기 앉아들 계신다.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과 발길을 붙들면서. 
할머니들이 파는 품목인 쑥, 냉이,  미나리, 잔파 등을 보며 나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여든은 되어 보이는 조개 파는 할머니는 굽어진 어깨를 웅크리며 하루종일 조개껍질을 까고 있다. 느리게 움직이는 손길을 보면 안쓰러움이 앞선다. 한 겨울에도 작은 깡통의 번개탄 숯불에 언 손을 녹여가며 조개껍질을 까고 있다. 바람 피할 곳 없는 난전에서 추위에 떨며 하루 종일 조개껍질을 까고 있다. 가늘게 떨리는 할머니의 곱은 손 끝에서 힘겨운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 옆에 나란히 나물과 채소를 파는 할머니 두 분이 있다. 그래도 이 분들은 찬 물에 직접 손 담그며 하는 일이 아니라서 조금은 나아 보인다. 가끔은 이 할머니들이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는 모습도 본다. 여기는 도로가이자 할머니들의 삶의 터전인 일터인 셈이다. 
조금 지나면 고구마와 마늘 등을 파는 할아버지가 있다. 나물 파는 할머니와는 뚝 떨어져 난전을 혼자 펼치고 있다. 할아버지는 난전을 펼쳐두고 손에는 늘 신문을 쥐고 읽고 있다. 장사에는 무심한 듯한데 벌써 몇 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수요일은 봄 비가 세차게 내렸다.
할머니들이 난전을 펼쳤던 자리에는 비 맞아 떨어진 벚꽃잎들만 빼곡하다. 이런 날은 난전을 펼칠 수 없다. 할머니들에게는 일없이 공치는 날이 된다.
문득 할머니들이 벌이가 없는 날에는 어떻게 생활을 유지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사회복지 손길이 구석구석 잘 닿아 극한 가난은 없다고들 한다. 
비 오는 어느 봄날,
할머니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팍팍한 삶이 아니기를 바래본다.
나는 우산을 움켜쥐고  가던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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