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유인원에서 사이보그 까지 사피엔스란?

아리아리짱 2023. 3. 8. 07:41
(사피엔스/ 유발하라리/ 조현욱/ 김영사)

 
저자인 유발 하라리를 통해 인간의 역사에 대한 깊고 넓은 통찰을 가져볼 기회가 되었다. 몇 년 전 읽었던 책인데 새롭게 와닿는 부분들이 많다. 재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인간의 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에 따라 주제를 구분해 놓았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60쪽)
인지 혁명을 통해  뒷담화 이론인 언어 혁명을 가져올 수 있었으며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임계치인 150명 이상의 크고 안전한 무리 형성이 가능하도록 하였다는 말이  새롭게 느껴진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현대국가, 중세교회, 고대 도시, 원시부족 모두 그렇다. 교회는 공통의 종교적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 65쪽)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을 믿는 독특한 능력이 있기에 협동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그 능력들이 결국 전설, 신화, 신, 종교를 넘어 거대 집단인 국가와 제국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농업혁명은 수렵 채집생활을 하던 인류에게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했고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가져왔다. 잉여 생산물의 축적이  불균등 재 분배의 시작이 되었고 그 결과 계급사회를 형성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경계를 뚜렷하게 형성하게 했다.
농업혁명은 식량의 양을 증폭시켰지만 노동량의 증가를 가져왔다. 그로 인해 일에 얽매이게 하는 시간은 늘어났으며 인간 삶의 질은 저하되었다. 그러니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고 저자는 혹평한다.
교역을 통해 돈과 종교 같은 상상 속의 질서를 만들어내어 인간의 삶을 행복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농업혁명으로 늘어난 노동시간과 농사와 관련된 날씨 변화에 따른 미래의 수확물에 대한 걱정등으로 인간은 더 바빠졌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결국 인간은 밀을 생산하여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이 아니라 결국 밀에 의해 인간이 지배당한 셈이 된 것이라고 한다.
 
과학혁명의 시대로 인간의 삶은 끝없는 변화와 발전을 해오고 있다.  반은 기계이고 반은 사람인 사이보그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고 저자는 예상한다.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현대 생활에서 스마트 폰은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눈뜨고 잠들기 전까지 휴대폰과 분리되기가 쉽지 않다. 그리니 혹자는 신체의 일부분이 된 폰은 5장 6부에 더해 7부 중에 한 가지라고까지 말한다.  아직까지는 스마트폰이 신체와 분리되어 손끝에 있지만, 머잖아 칩으로 신체 일부에 심어지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한다. 
가족이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기가 힘든 시대가 되었다. 각자의 바빠진 삶으로도 함께 하기도 힘들지만,  같이 앉아 있어도 함께임을 몰두하기가 어렵다. 각자의 폰을 들여다보며 각자의 세상에 빠져있기 쉬운 현실인게다. 발달된 문명의 기기들은 사피엔스를 더욱 고립으로 이끈다. 일련의 모든 발전과 발달은 인류 행복을 구현하기 위한 것들이었을 텐데 그 결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밀의 생산이 수렵채집 시대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던 것처럼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삶에 더욱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생활의 편리함은 분명 나아졌지만 인간의 마음에 행복감은 더 증진되었을까?
 
현대인들은 역사상의 어느 종교보다도 더 강력한 자본주의 - 소비지상주의에 빠져있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에는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이다.
자본주의-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다른 면에서도 혁명적이다. 이전 시기의 윤리 체계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매우 힘든 거래를 제시했다. 사람들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러려면 동정심과 관용을 키우고, 탐욕과 분노를 극복하며, 이기심을 억제해야만 한다는 족건이 붙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너무 어려운 조건이었다. 윤리의 역사는 아무도 그에 맞춰 살 수 없는 훌륭한 이상들로 점철된 슬픈 이야기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예수를 모방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불교도는 부처를 따르는데 실패했으며, 대부분의 유생들은 공자를 울화통 터지게 했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소비지상주의 이념을 성공적으로 준수하며 살아간다. 새로운 윤리가 천국을 약속하는 대신 내놓은 조건은 부자는 탐욕스러움을 유지한 채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시간을 소비할 것, 그리고 대중은 갈망과 열정의 고삐를 풀어놓고 점점 더 많은 것을 구매할 것이다. 
이것은 그 신자들이 요청받은 그대로를 실제로 행하는 역사상 최초의 종교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대가로 정말 천국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505~ 506쪽)
 
소비할 수 있는 이상의 공급으로 넘쳐나는 생산성에도 여전히 지구 한편에서는 굶주리고 헐벗는 사피엔스가 존재한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자본주의 -소비지상주의의 끝은 어디일까?  
지구를 넘어 우주를 향하는 현대의 과학발전은 마냥 인류를 행복으로 이끄는 변화와 발전들일까? 
사피엔스! 인류의 욕망에 따른 발전은 어디까지일까? 그 끝은 행복을 향한 무한한 성장일까? 아니며 모두의 파멸일까?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생긴다. 그 답들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