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감사합니다.

사랑은 김치를 타고~

아리아리짱 2022. 12. 26. 06:21

나는 여전히 김치 난민이다.
양가 어머님들이 살아계실 적에는 두 분이 번갈아 공수해 주시는 김치를 미처 다 먹어내지 못할 정도로 풍성했다.
식당을 운영해서 자식 여섯을 다 대학 공부 시킨 시어머님은 음식 솜씨가 탁월하셨다. 어머니는 넷째 며느리가 살림에는 젬병인 것을 일찍이 알아차리셨다. 그래도 어여삐 여겨주시어 기력이 많이 떨어진 노년에도 직접 김치를 담가주시곤 했다.
친정어머니는 젓갈을 듬뿍 넣은 경상도식 김치를 담그셨다. 맏사위가 맛있게 잘 먹는다고 김치 떨어질 새 없이 만들어 주시곤 했다.
두 분의 김치 보살핌으로 그렇게 아쉬움 없이 살았다. 두 분이 연로하셔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가신 후에는 나는 김치 미아가 되었다. 김치 난민이 된 것이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입 맛에 맞는 김치를 발견하여 주문해서 김치를 해결하고 있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옆구리가 시리고 헛헛하다.
두 분의 손길이 참으로 그립다.
노력해서 맛을 재현해 보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요리는 내게 넘사벽인 게다. 요리에 취미가 없으니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쉽게 댄다.
나의 이런 사정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종종 김치 원조를 해 준다.
수원에 사는 남동생은 처가인 부산에서 김장을 하면 슬며시 한 통은 우리 집에 내려놓고 가곤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사돈어른이 몸이 편찮아지셔서 직장 생활로 바쁜 올케도 김치는 자체 해결하는 듯하다.
지난달 오랜만에 동생부부가 검은 봉지 큰 것을 두 개나 들고 방문했다. 처가 어른들을 뵐 겸 부산에 왔단다. 반찬으로 올라온 김치가 맛있어서 여쭈어 보고 부전 시장에서 사 왔단다. 자형이 좋아할 젓갈 맛이 많이 나는 김치란다. 주문김치와 달리 예전 어머니 손 맛이 났다. 어쨌든 올 김장철은 헛헛할 새 없이 지나가겠다 싶었다.
며칠 전 후배가 전화를 해 잠깐 들리겠단다. 김장을 했는데 언니 생각이 나서 따로 담아 두었다는 것이다. 후배는 농협 지점장을 역임하다 은퇴를 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후배는 단출한 살림인데도 매실도 담그고 김치도 직접 담가 먹는다. 만날 때면 이것저것 나눠주기를 좋아하던 후배다. 그래도 연산동에서 하단까지 운전해 오기가 가까운 길은 아닌데 조금 미안하고 많이 고마웠다.
동생과 후배 덕분에 올 겨울 김치사정은 따뜻하다. 이 넘치는 사랑을 어찌해야 다 갚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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