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역사와 문화의 공간, 녹(록)명헌(鹿鳴軒)

아리아리짱 2022. 12. 21. 05:48

'고은회'는 고운 마음과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자는 뜻을 담은 고등 동창모임이다. 그런 뜻을 모아 네 명 모두가 '열매 통역봉사'의 회원이기도 하다. 스터디와 월례회에서 보기도 하지만 분기에 한 번씩 만나, 우리들만의 돈독함을 다진다. 그동안 코로나 등의 이유로 모임이 여의치 않았다.


오랜만의 우리들 만의 시간을 갖자며 바둑 하는 친구가 제의를 했다. '녹(록) 명헌'이라는 곳이 있는데 방문도 하고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다. 친구의 말에 우리는 무조건 좋다고 의견 일치를 봤다. 보내준 몇몇 사진만으로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가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이끌리는 없기 때문이다.


부산역에서 10시 30 분에 만나서 2 층에서 바로 연결된 부산항 국제 여객 터미널 쪽으로 나갔다. 고가 다리로 연결된 길을 따라가니 녹명헌이 있는 건물(협성 마리나)로 바로 닿을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선생님 한 분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차를 준비하시면서 선생님은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왔냐고 물으신다. 우리는 바둑 하는 친구가 가자고 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방문했다가 대답했다. 선생님은 역시 그 친구에 그 친구들이다라며 크게 웃으신다.
그래서 와보니 어떤 공간인 것 같냐고 다시 물으신다. 카페 같기도 하고, 스터디룸 같기도 하고 , 정확히는 잘 알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천천히 녹명헌 공간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우선 '녹명헌은 사슴이 우는 곳'이라는 뜻으로 시경의 한 구절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사슴이 울 때는 먹이가 있을 때이고, 반드시 친구와 함께 나누는 특징이 있다고 하신다.


향천 정영석 선생님은 부산에서 오랜 공직생활을 하시다 동구청장을 역임하시고 은퇴하셨다. 은퇴 후 당신이 사회로부터 특히 부산에서 받은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것을 다시 되돌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단다.
그래서 문화와 역사 공간인 녹명헌을 마련하신 것이다.

향천 선생님은 녹명헌이 세 가지 일을 담당하는 곳이길 원하신다. 통역, 선양, 공부!
첫째는 통역이다. 향천 선생님은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시다. 중국어는 통역가이드 자격증을 가지고 계신다. 녹명헌 장소를 국제 여객 터미널 앞에 정하신 것도 이유가 있다. 크루즈가 부산항에 닿으면 그 선장들에게 부산의 역사와 진면목을 알려주기 위해 부산 시장이나 실무진을 연결해서 부산을 매력적인 관광지로 알리기 위함이다.
선생님은 부산시에서 오래 근무하셨기에 당시 광안대교가 왜 상하 왕복 차선으로 설계되었는지와 초량, 수정동 일대의 '이바구길' 등의 유래 등 부산의 모든 역사를 꿰뚫고 계신다. 재직 당시 기획에서 실무까지 거의 관여하셨기 때문이다. 부산 발전 역사의 산 증인이신 게다. 그러니 부산의 구석구석을 결을 살려 스토리 텔링을 입혀 외국 선장들에게 보다 잘 홍보할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 부산은 충분히 매력적인 관광지로 어필할 수 있는 곳이라고 믿으신다. 크루즈가 부산항에 정박하는 기회와 시간이 늘어날수록 관광객으로 인한 부산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일반 통역인들은 언어적 능력은 있지만 부산의 숨은 역사까지 알기는 쉽지 않기에 선생님은 그 역할을 자처하신 것이다.


두 번째는 선양이다. 선양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으나 상대적으로 명성이나 권위를 얻지 못한 위인을 발굴하여 널리 알리는 작업이다. 선생님은 허난설헌을 예를 들며 그녀의 천재적 예술성에 비해 우리 역사상에 위치하는 비중은 너무 작다고 하시며 관련된 사료 등을 찾아보고 공부 중이라고 하신다. 그 외에도 부산을 빛 낸 문화 예술분야의 훌륭한 분들을 찾고 알리는 작업을 하기 원하신다.


세 번째는 녹명헌이 공부 공간이 되기를 원하신다. 각종 토론회나 연구회 등 공부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라신다.
그동안은 코로나로 인해 크루즈 입항이 드물었다. 그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선생님은 부산과 우리나라 일대의 아름다운 곳, 알리고 싶은 곳을 사진에 담으셨다고 한다. 그것을 묶어 <녹명헌 견현여행> 책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하신다. 꾸준히 공부하는 자세를 보여주신다.
입구 들어서면 마주 보는 공간에 가방 그림이 하나 있다. 향천 선생님은 우리가 죽으면 결국 빈 손으로 갈 것이며, 저 가방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삶이 다할 때쯤 가질 수 있는 것은 저 가방 크기에 맞는 정도이길 다짐한다고 하신다.
사재를 털어 이런 공간을 만들고 또 사회에 환원하려 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운 분이시다. 이런 선생님들이 많아 지기를, 또한 우리가 그 길을 따르기를 소망한다.
"향천 정영석 선생님이 운영하는 역사문화 공간인 '녹명헌'이 활성화되어 부산과 대한민국에 한 획을 담당하길 기원합니다."

 

(녹명헌에서 바라본 부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