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

아리아리짱 2019. 4. 15. 06:00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 (조정래, 조재면/해냄)

자라면서 학교 교육으로 '빨갱이'라는 단어는 공산주의로 무장된 괴물에 가까운,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고 싫어해야 하는 존재로 알았어요. 이런 저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은 후에 나의 단편적 생각들이 바뀌었어요. 이들 중에는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피치 못할 전쟁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북한군에게 약간의 조력을 한 사람들도 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죽음으로 몰리게 된 것도 알게 되었어요. 내 기존의 빨갱이에 대한 경계를 허무는 계기를 준 '태백산맥'이었지요. 그 작품을 쓴 조정래 작가는 사설을 이용한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대화'에서 국가와 사회의 중대사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 한 권의 책이 되었어요.

작가의 아들이 군 복무 중 지나친 구타로 완치 불가능의 목디스크를 안고 제대하게 됩니다. 작가의 울분과 분노는 하늘을 찌르지만 아비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무기력을 느낀 것이 불과 1995~96년도에 일어난 일입니다.

1967년, 작가의 군생활 당시도 역시 군기를 잡기 위한 '매타작'이 만연 했었고 고통의 시간들이었대요. 그 군대 폭력의 뿌리는 일제 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군국주의 일본은 폭력으로 유지되었고 군대가 아닌 징용으로 끌려간 모든 사업장에서 까지도 폭력이 다반사였고 이에 대한 저항은 총살이었대요.

해방 후 미군정이 실시된 남한은 당장의 체제 정착의 편리함을 위해 일제강점기에 활약했던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들을 그대로 등용한 그 경거망동으로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을 어지럽히고 병들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공무원 조직, 경찰, 법조계, 실업계, 은행계 등 모든 국가 사회조직이 친일파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조직이 군대다. 대한민국 창군과 함께 군대 조직을 장악한 것은 일본 육사 출신들이었다. 독립운동을 했다 하면 그 어디에도 취직이 안 되던 기막힌 시대 상황이었으니 새로 만들어진 군대에서 독립군 출신들이 기를 펴기란 가망 없는 일이었다.

일본군 출신들이 장악한 군대는 그대로 일본식으로 운영되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폭력으로 군기잡기였다. 그 폭력행 사는 6.25를 거치면서 더 거칠어졌고, 그 일본군 출신들은 5.16을 계기로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장도 되고, 국무총리도 되고, 국방장관. 참모총장 등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하는 판이었으니 군대라는 성곽은 더욱 높고 견고해지면서 폭력은 군기 잡기의 신효한 약으로 장수를 누릴 수밖에 없었다. (위의 책 11쪽)

그 군대에서 시작된 폭력은 사회 전반에 병균처럼 번져 대학사회, 의료계, 공사현장, 중소 제조업체 등에서 일상적인 욕지거리와 손찌검으로 표현된대요.  군대식 폭력에 오염되고 병들어 있는 우리는 이런 야만적인 사회 속에서 서로를 동물 시 해가면서  못된 군사문화의 판박이가 되고요.  이것은 가정폭력은 물론 데이트 폭력으로 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작가는 진정한 민주국가의 군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민주 국가의 군대는 우정과 배려와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하며, 그 조화가 사랑을 잉태시키고 신뢰를 생성시킨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의로 뭉쳐질 때 조국에 대한 자발적 충성이 생겨나고, 그 힘이 곧 진정 강한 군대의 사기가 되는 것이다. (위의 책 12쪽)

저자는 평생 완치할 수 없는 목디스크를 안고 제대한 아들을 위해 아비로서 아무것도 할 수없었던 죄인이 된 무기력한 우울감으로 몹시 힘들었대요.  폭력이 당연시되는 군대 문화에 더해 '태백산맥'을 쓴 저자인 '빨갱이'의 아들이라 폭력이 더 가중되어 밤낮으로 맞았던 것을 안 저자는 울분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대요. 저자 역시 태백산맥을 쓴 빨갱이 혐의로 대공분실에 잡혀가서 조사받기도 했고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던 그때 복학하는 아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사설 공부'가 떠올랐답니다.

신문 사설들은 중요한 사회 문제를 짧게 응축시킨 논리들로 분석, 비판, 평가한 모범적이 글들이다. 그것들을 매일 정독하고 논리구조를 파악해 가면 그보다 더 좋은 공부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위의 책 14쪽)

작가는 아들에게 사죄 의식으로 그날의 사설을 읽고 논리 전개를 짚어주고 기. 승. 전. 결을 확인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주고, 끝으로 매일 읽은 사설을 노트에 베끼기인 필사를 시켰대요.

'열 번 읽어 해독되지 않는 문장이 없고,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필사하는 것이 낫다.'라는 옛 글 귀를 강조하면서요. 덕분인지 작가의 아들은 석사, 박사 과정의 논문들도 무리 없이 잘 통과한 것 같다고 합니다.

작가의 사랑은 손주에게로 이어져 같은 문제를 다룬 두 신문사의 이색적인 사설 대비를 제삼자 입장에 선 전문가가 동일한 문제의 다른 시각이나 논리로 전개된 분석, 평가한 글이 능률적이고 효과적인 논술교육이 될 것이며 또한 손자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 여기고 스크랩해서 손자에게 주었는데 손자가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 써서 할아버지에게 보내면서 <대화>가 시작됩니다.

고등학생인 손자의 논리력과 필력에 놀랐으며 이 책이 논술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되어 논술로 고민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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