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아리아리짱 2019. 4. 10. 05:57

김민식 피디님의 추천으로 김보통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작가의  글들이 진솔하고 재미있어 읽는 내내 웃음보가 터졌어요. 김보통 작가 정말 보통이 아닌 작가입니다. 글들이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쑥 가슴 깊이 밀고 들어오는 것들이 있어요.

 

큰 고민 없이 글을 씁니다. '지금부터 엄청난 글을 써봐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로 씁니다.(중략)

잊히는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중략) 

이 책은 시대의 흐름 때문이건, 필연적인 과정의 결과이건 '이쯤에서 퇴장하겠습니다.'라는  작별 인사도 전하지 못한 채 사라져야 했던 것들에게 보내는 뒤늦은 인사입니다. 이미 인사를 받아줄 대상은 모두 사라져 홀로 손을 흔드는 꼴이라 조금 서글프지만, 산다는 것은 대체로 그런 법이지요. (위의 책 10~11쪽)

 

왜 김피디님이 믿고 보는 작가이고 왕팬이라 하셨는지 알겠어요. 드러내기 힘든 속 깊은 내밀한 얘기를 민낯으로 조금도 주저함 없이 진솔하게 쓴 작가의 글에 많은 긍정적 자극을 받았어요. 읽는 내내 긴장감을 무장해제시켜주고 휴식을 주는 표현들에 웃음이 빵빵 터졌어요. 작가의 외삼촌 말씀처럼 작가의 글은 쉽고 간결해서 더 직접적으로 와 닿고 뜻이 전달됩니다. 꾸밈없는 날 것의 강렬함이 있어요.

 

몸에서 술이 받지 않아 술을 못 마시는 작가에게 동료가 회식자리에서 정신력으로 술을 마시고 버텨야 한다고 말했을 때 작가가 한 말이 "너 수영할 수 있니?" "아니 못하는데." "수영도 정신력으로 해보지 그래?"라고 했대요. 그래서 작가는 다음의 글을 썼어요.

살면서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타인도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위의 책 59쪽)

헝가리에서 자전거 여행 시 말벌집을 짓밟고 말벌 무리 사이로 질주하는 크레이지 한 아시아인 청년에는 그 생생한 표현과 장면으로 빵 터졌어요.

 

작가는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돼요. 그 참가 동기가 잘할 수 있어서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올해 아니면 내년에는 못 할 것 같은 것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한 것이었대요.

작가는 첫 마라톤 참가 후 다음날 앓아누웠지만, 기념품으로 받은 모자가 상당한 위로가 되었대요. 사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기념품이 무시하지 못할 유혹이 되니까요. 그래서 그 이후로 기념품 챙기는 쏠쏠한 재미와 함께 각종 마라톤 대회에서 끝까지 완주해 내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어쩌면 '진짜로 늦은 것' 따위는 없을지 모른다. 1등으로 완주를 하거나, 마라톤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어찌 됐든 나는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어렴풋이 살아갈 방향 같은 것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이기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록을 단축하는 것도, 완주를 해내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못할 것 같은 일, 이미 늦어버린 것 같은,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했던 일을 천천히 나의 속도로 해내는 것. 설령 완주하지 못해도 괜찮다. 기념품은 대회에 참가만 해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것으로 됐다. 즐거운 마음으로 뛰듯이 걷는다. 걷다가 힘이 생기면 그때 뛰면 된다.(위의 책 97쪽)

 

흔히들 '인생은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이라고 하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저 나의 속도로, 뛰는 과정은 힘들고 괴롭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걷듯이 뛰고 뛰듯이 걸으며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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