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부산 큰솔나비에서의 '세바시'

아리아리짱 2020. 12. 7. 06:00

 

 

(송년회서 정한 나의 한 단어)

 

 

부산 큰솔 나비 독서모임에는 ‘세바시’ 코너가 있습니다. 10분의 시간을 통하여 자신의 소개와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말하는 시간입니다. 격주의 토론회에서는 각조 5~6명과의 독서 나누기를 합니다. 선배님들 모두와 토론 기회를 가지고 각각을 알아가기에는 출석인원 약 50명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세바시’ 시간에 자기소개를 통하여 전체 선배님을 알아갑니다. 지난해 6월의 첫걸음으로 어느 듯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세바시 시간을 통해 선배님들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제 차례가 오면 무엇을 얘기할 까 생각 중이었는데 토요일 '송년의 밤'에 저의 차례가 되어 '세바시'를 발표했습니다.
---------------

저에게는 제 삶에 큰 영향력을 주신 세 스승님들이 계십니다. 영어에 관련된 워스트 스승님과 베스트 스승님, 그리고 풍요로움을 가져다준 인생 스승님들입니다. 그분들을 소개하면서 저에 대한 소개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워스트 스승님은 저의 중학교 시절 첫 영어 선생님입니다. 제가 중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그 시절은 학원이 거의 없었고, 부잣집 아이들은 개인과외를 하는 그런 시절이었어요. 그나마 언니, 오빠가 있는 아이들은 중학교 들어가기 전 알파벳을 겨우 익히고 들어가는 정도였어요. 당시 영어는 중학교 때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과목이었고요. 오빠에게 영어 알파벳을 배운 저는 입학 후 첫 영어시간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아주 컸습니다.

첫 영어 수업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은 서울대 출신의 50 대 남자 선생님이셨고요. 간단한 자기소개 후 칠판에 You를 크게 쓰시더니 저를 불러 세워서 읽어보라고 하셨어요. 알파벳을 알고 있는 저는 일어나서 ‘와이, 오우, 유’ 라고 자신 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실망한 눈빛으로 그냥 ‘앉아’ 라고 하셨어요. 그리고는 중학생이 되어서 이 단어도 제대로 못 읽느냐며 이렇게 준비 없이 중학교에 왔냐는 것이었어요. 저는 어리둥절 당황했습니다. 선생님 기준으로는 ‘유’라고 읽을 정도는 준비해서 중학교 와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파닉스 정도 되어있어야 한다는 거죠.

중학교 신입생들을 ABC 기초부터 소리 값을 익히게 해서 가르치려니 귀찮고 한심한 생각이 드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영어시간부터는 선생님은 저에게는 발표할 기회를 두 번 다시 주지 않았습니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선생님이 싫어지니까 영어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되어버렸어요. 영어 수업 첫 시간 그 선생님의 실망한 차가운 눈빛은 잊을 수가 없었고 그것은 저에게 상처를 넘어 트라우마가 된 것입니다.

영어 과목은 점수가 기본도 되지 않았지만 책 읽기를 좋아했던지라 국어 성적은 최상이어서 성적은 중상 정도는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중 1, 2 학년을 보내고 나서 중3 담임 선생님을 좋은 분을 만나 공부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니 늘 전교 1등 하는 반 친구를 이어 반에서 2등, 전교에서 20 등 정도까지 유지했고, 한 번은 600명 넘는 전체 학생 중에 8등까지 성적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는 중간 정도에서 머물고 성적 변화도 없고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어요. 다른 과목은 거의 만점 가까이 나오더라도 이대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 진학이 힘들 것 같았어요.

국어 선생님이 꿈인 저에게 영어가 제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맏딸로서 넉넉지 않은 부모님께 보탬이나 되자는 생각으로 부산진여상으로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졸업하여 투자 신탁에 입사하여 비교적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했고요. 그래도 공부에 대한 열정은 남아있어 회계학을 전공하며 직장생활과 야간대학을 병행했습니다. 국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직장생활과 병행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상과 과목이 겹치는 회계학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첫아이인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고귀한 생명체를 내가 낳았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무에서 유인, 생명체인 아기도 낳았는데 내 평생의 트라우마 ‘영어’ 그것 하나 내가 극복하지 못할까? 내가 다시 노력하면 영어도 극복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는 금융계통의 직장들이 여직원은 결혼하면 당연히 퇴사를 해야 하는 아주 보수적인, 지금으로는 말도 안 되는 시대였어요. 육아를 하면서 다시 직장생활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함께 하던 중이었습니다. 마침 그때 ‘배짱으로 삽시다’의 이시형 박사님이 주부가 사회로 재취업하기 위해서는 영어와 컴퓨터만 능숙히 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글을 읽고 더욱더 용기를 냈습니다.

아이도 나처럼 영어 때문에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영어 테이프를 온종일 틀어주고 함께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아이는 영어를 아주 부담스러워하고, 한 번도 강요하지 않은 수학을 좋아하게 되어 수학 영재가 되었다는 슬픈(?)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둘째인 딸이 태어나서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본격적으로 회화학원도 다니고 관광통역사 시험도 치면서 꾸준히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레 학원 분야에서 일도 시작하게 되었고요. 영문학과로 편입하여 공부도 계속하며 가르쳐 왔는데도 제가 노력한 만큼의 말하기 실력은 늘지 않는 듯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영어에 대한 트라우마 극복이 30여 년 영어공부를 지속하게 했고 더불어 20여 년의 직장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제 인생의 화두가 된 셈입니다. 계속 고민해 오던 중 <영어책 한 권 외워 봤니?> MBC 김민식 피디님의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30년간 영어와 씨름 해오며 고민하던 부분에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김피디님은 공대생 출신인데 20대 때 영어책 통째 암기방식으로 영어공부를 하여, 한국에서 가장 영어 능통한 사람들이 갈 수 있다는 한국외대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MBC 피디님이 되었어요.

책을 읽은 후 피디님의 ‘공짜로 즐기는 세상’ 블로그를 방문했습니다. 피디님은 당시 7년째 매일 아침 글을 올리고 계셨던 것이었어요. 그 성실성에 그때부터 김 피디님의 팬이 되어 영어책 한 권 외우기도 도전하고 피디님 블로그에 댓글도 매일 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3년 전입니다. 그렇게 댓글 달기로 저의 글쓰기는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다 피디님의 두 번째 책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고, 지금은 누구나 블로그 개설이 가능하지만, 당시의 티스토리는 초대받은 이만 개설할 수 있는 블로그여서 피디님이 초대하시어 티스토리 블로그 ‘나무와 숲’을 개설했습니다.
막상 초대를 받고 글을 몇 개 써보니 날마다 글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정 휴업 중이었는데, 피디님이 가장 많은 댓글을 달은 성실 댓글러에게 식사초대를 작년에 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니 초대받은 분들 댓글 명 꿈트리 숲님, 섭섭이 짱님, 보리랑 님 등 모두가 블로그 글쓰기를 하고 계셨고요. 그중 꿈트리 숲님은 당시 인천 송도 나비 회장님을 하시면서 저에게 부산 나비를 추천하신 것입니다.

많은 자극과 용기를 받은 저는 작년 2월 13일부터 거의 날마다 꾸준한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날마다의 글쓰기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면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김민식 피디님은 영어로 시작해 저를 글쓰기로 이끌어 주신 스승님인 것입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제 젊은 날을 영어로 향하게 하여 그것으로 직업으로까지 연결하게 하신 워스트 스승님!  본래도 조금 불량주부인데 매일 아침 글쓰기 한다는 이유로 꼼꼼한 살림살이에는 점점 멀어지는 부작용을 준 글쓰기,
그 블로그 글쓰기로 이끌어 주신 베스트 스승님! 이상은 저의 워스트, 베스트 스승님 두 분에 대한 소개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인생 후반을 풍요롭게 이끌어 주신 인생 스승님은 부산 큰솔 나비 회장님 부부입니다.

내년이면 60인 제가 인생 후반에 부산 큰솔 나비를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다양한 분야와 연령대의 좋은 선배님들과 이렇게 책 나눔을 통하여 나로 비롯되는 선한 영향력인 ‘나비’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MBTI 검사에서도 나타났듯이 낯가림이 큰 제가 이렇게 독서모임에 꾸준히 참여하는 적극성을 가지게 되면서 저의 삶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큰솔 나비 아카데미를 통하여 3P 바인더와 감사일기 쓰기, PPT와 망고 보드, 경제공부와 주식공부, 다양한 휴대폰 기능 배우기와 글쓰기 특강 등, 감히 도전하기 힘든 분야를 여러 선배님들의 재능기부로 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회장님 부부의 아낌없이 나누는 선한 영향력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회장님 부부가 ‘부산 큰솔 나비’의 장을 만들고 이끌어 주셔서 제 인생 후반이 풍요로워진 것입니다.

회장님 부부를 보면서 저도 나눔의 소중함을 키워 진정한 나비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회장님 부부는 저의 나비 스승님인 것입니다.

스승님들 덕분에 제 인생의 화두 ‘영어, 글쓰기 그리고 나눔’을 향해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저의 글 이름인 ‘아리아리’, ‘아리아리 짱’처럼 길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사람을 응원하면서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세바시를 마치겠습니다.

부산 큰솔 나비 아리아리!

 

'책 감사, 강의감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10) 2020.12.18
추락 3분 전  (10) 2020.12.11
나에게 부산 큰솔 나비란!  (16) 2020.12.04
세계미래 보고서2035-2055  (10) 2020.12.02
인 (仁)  (15) 202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