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내 생의 아이들

아리아리짱 2020. 9. 18. 06:00

코로나 재확산으로 도서관 책 대여가 여의치 않아 책장 깊숙이 있던 책들 중 <내 생의 아이들> (가브리엘 루아/현대문학)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은 예전에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프로그램에서 선정된 도서입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온 국민에게 좋은 책 소개와 함께 책 읽기를 할 수 있도록 많은 동기부여를 주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추천하는 책을 읽지 않으면 대화가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책들이 전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왔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소개하는 모든 책들을 구매해서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자 가브리엘 누아는 캐나다의 광활한 초원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8년 동안 오지 마을에서 교사생활을 했습니다. 그녀는 그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에 작가와 기자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작품에서의 캐나다 대 자연의 묘사가 코로나로 답답한 이즈음에 많은 위로를 줍니다. 캐나다 자연 풍광을 즐기는 여행의 열망을 더 크게 가지게 하면서요.

캐나다 오지의 이민자가 많은 가난한 마을에 18세의 갓 부임해온 초임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꾸려나가는 소박한 삶들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중 여섯 명 아이들이 각기 다르게 처해있는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려 애쓰고, 그들을 사랑하는 새내기 선생님의 좌충우돌의 풋풋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너무도 가난하지만 선생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는 어린 천사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따뜻한 감정들이 느껴졌습니다. 악동 중에 악동일지라도 그들의 환경을 이해하고 다가가며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려 노력하는 초보선생님의 순수함도 새삼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전 교사들이 맡기를 꺼려할 정도로 말썽장이인 메데릭은 키는 선생님보다 머리 하나 더 크고 나이는 겨우 네 살 아래인 열네 살 어른 덩치의 소년이었어요. 그 골칫덩이 학생과 공감대를 넓혀가는 선생님의 무기는 넓은 이해심이라기보다 서투름이 그 아이의 마음의 벽을 결국 허물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 안 듣는 녀석쯤이야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이지만 여전히 애가 타는 초보 선생님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나타냅니다.

그가 나타나기 전에는 우리 반은 잘만 되어가고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이 괴상한 녀석을 물려받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세 번, 나는 그를 못 본 체하고 자신이 바라는 대로 무지와 무료함 속에 팽개쳐두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내 나 자신도 어쩔 수 없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밀어주어야겠다는 열망에 다시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그처럼 당시 나의 열정은 사랑만큼이나 절박한 것이었다. 사실 내가 일생 동안 느꼈던 그 뜨거운 욕구, 지금도 내가 각자에게서 최고의 것을 얻어내려고 싸우는 그 욕구는 사랑이었다. (...)

메데릭은 그의 자유로운 꿈속에서 무한히 먼 곳으로 헤매고 다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참다못해서 내가 좀 큰 소리로 그를 부르기라도 하면 그는 한참 만에야 공상에서 되짚어 나오는 것이었고 매번 어딘가 묶인 것을 풀려는 듯이 목을 흔들며 학교의 책상 뒤에 앉아 있는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179쪽)

나는 그래서 그를 상상의 여행에서 불러내 오는 것이 어쩐지 망설여지곤 했다. 그 여행이 한결같이 행복한 것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빛이 유난히 황혼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 그 여행이 때로는 그를 고통스러운 추억들로 인도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의 몽상은 가장 상처 받기 쉬운 나이의 아이가 스스로 구축하는 저 범접할 수 없는 피난처로 그를 데려가는 것이었다. 머지않아 그런 여행 중일 때 그를 불러내는 것이 내게는 가장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나 자신 그런 시절의 상처를 이제 간신히 치유한 상태였고 겨우 청소년기의 몽상에서 벗어나 아직 성년의 삶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이른 아침 교실에 서서 내 어린 학생들이 세상의 새벽인 양 신선한 들판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학교라는 함정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로 달려가서 영원히 그들의 편이 되어야 옳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자, 메데릭, 정신 차려야지!"

이제 내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청하듯이 주의를 주게 되었으므로 그 역시 내가 말하면 한동안은 시키는 대로 정신을 차렸다. 때로는 나를 알아보고 미소를 짓는 때도 없지 않았지만... 이내 또 몽상 속으로 되돌아갔다. (180쪽)

<내 생애의 아이들>을 다시 읽으면서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사랑으로 가르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좀 더 아이들 입장을 이해하고 좀 더 사랑으로 대할 수 있도록 다짐해 봅니다.

사교육의 선생님으로서 '내 생의 아이들' 중 몇 명이 떠오릅니다.

그중 첫사랑의 순정남이며 얼마 전 군 입대한  '원데렐라'가 생각납니다. 얼마 전에 070번으로 시작하는 전화가 연이어 며칠간 걸려 오길래 스팸전화인가 싶어서 받지 않았습니다. 수업시간에는 전화받기가 쉽지 않아 낯선 번호는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며칠 후 원혁 어머니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원혁이가 군대에서 공중전화로 선생님께 안부 전화드리려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070으로 시작되는 군대 전화번호이니 받아도 된다고 전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신병 훈련기간이 지나 휴대폰 사용이 가능한 제자 '원데렐라'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건강하게 잘 적응하고 있다는 안부였습니다. 군대있는 기간 동안 힘들더라도 책 읽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했습니다. 군대에서 책 읽는 습관을 들인 사람들이 사회에서 성공한 예를 많이 보았다고 전하면서요.

지금은 막내 신참이라 시간 내기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짬 내서 책을 읽겠다고 합니다. 제자 '원데렐라'가 건강하게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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