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감사합니다.

늘 고마운 그대 (3)

아리아리짱 2019. 3. 22. 07:34

 

작년(2018년) 3월 이맘때, 평소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던 건강한 남편이 열이 나면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어요.  동네 병원에 가서 감기약을 처방 받아서 먹고 하루 지났는데도 여전히 열이 내리지 않았어요. 저는 그 때 100세인생의 노후에, 일이나 봉사로 도움이 될 듯하여 친구샘이랑 요양보호사 시험 준비중이었어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계속 아프면 그 날이 일요일인지라 삼육병원이라도 가라고 하며 공부하러 갔습니다. 

 딸은 당시에 예비사위와 데이트 하며 해운대에서 시간을 보내던중 아무래도 아빠가 심상찮은 생각에, 집으로 와서 예비사위와 함께아빠를 모시고 병원 응급실로 갔던 것입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독감 검사를 해도 음성이고 열은 내리지 않았던거죠.

그러자 딸이 아빠가 며칠전 부터 발음이 약간 어눌 한 것 같았다고 하니 의사가 CT 촬영을 해보자고 했어요. 사진 결과 뇌에 무엇인가 큰것이 보이니 대학병원으로 옮기라고 한 것입니다. 의사는 MRI를 찍어 봐야 자세히 알 수 있지만 뇌출혈이나 뇌종양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어요. 딸에게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하는 저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응급실에서 목 늘어난  낡은 티셔츠를 입고 아파하며 누워 있는 남편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렇게 아파 하는 사람 팽겨 쳐두고 제 볼일 보러 갔던 것이 너무 미안했습니다.

의사에게 작년 5월에 아이들이 어버이날 선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캔하듯 종합 건강 검진을 하게 해서, 남편은 머리 MRI도 찍었고 당시 아무런 이상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종양이 커질 수 있냐고 하니까,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하면서 자세한 사진을 찍어야 알겠지만 '뇌농양'일 가능성을 얘기하며, 그래도 뇌출혈이나 뇌종양에 비해서는 조금 다행일 수 있으니 얼른 수술 가능한 대학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동아대병원 응급실로가서 다시 MRI를 찍고 검사를 하는 동안 남편은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고통을 호소 했습니다. 검사 결과 의사가 '뇌농양'일 가능성이 가장 높고, 일단 수술을 해야 정확한 결과를 알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농양 위치가 너무 위험한 자리이고 크기가 커서 수술은 장담할 수 없다고 했어요. 수술이 잘 되어도 휴유증으로 신체의 마비가 올 수있고, 재활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커질 정도면 많이 아파 했을텐데 가족이 잘 몰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평소 보다 행동이 조금 느렸고, 자꾸 되물어서, 장난치는줄 알고 짜증을 냈던 것이 떠올랐어요. 붕어빵처럼 닮은 딸은 아빠 말이 어눌한 것을 느꼈지만, 저는 제 일 바쁘다는 핑계로 감기 기운 있다고 하는 그이 말에, 병원가서 주사 맞고 약먹어서, 내가 신경 않쓰게 해달라고 무심히 얘기 했던 것입니다.

뇌농양은 십만명중의 한명이 걸리는 드문 질환으로 보통 세균 감염이 원인이라는데 남편은 발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병원에서는 치실의 반복적 사용으로 감염 가능성을 얘기 했어요.

수술전 의사가 한번 더 수술의 위험성과 수술후의 후유증을 설명 할 때는 의사들의 의례적 위험 예고를 감안 하고도 너무나 무섭고 겁이났습니다. 아직 제대로 행복한 삶을 누리지도 못했는데, 무슨일이 생기면 어떡해야 하나 하고 너무나 걱정되고 남편이 가여웠습니다.

수술이 오후5시에 시작되서 자정이 넘어 끝난  7시간 동안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그이 없는 지구상의 나의 삶은 의미가 있을까? 애를 태우며 수술실 바깥에서, 그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 돌아오기를 간절함으로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잘 되었고, 수술후 의식 회복과 함께 말하는것과 손,발 움직임이 자유로운 그이에게 너무나 감사 했어요.  회복기 2~3주를  2차 감염이 되지 않도록 무사히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사의 말에, 중환자실과 집중병실에서 아픈과정을 견뎌 내주는 그이가  안쓰럽고도 고마웠습니다.

회복기를 잘 넘긴 남편은 정말 다행이도 어떤 후유증도 없이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었고 입원 한달여 만에 퇴원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남편은 약간의 휴식후 사무실을 다시 나가며, 아직 까지 정기 검진과 약은 복용하고 있지만 평소의 일상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들, 딸과 함께 이 힘겨운 수술과정과 회복과정을 함께 함이 엄청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어요. 함께함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서로 존중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함을 되새겼습니다.

"장성한 아들, 딸 정말 고마워."

평소 건강을 자신했던 그이 인데 이렇게 속절없이 병이 올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남편의 수술은 약간 교만했을 제 삶에 겸손과 감사함을 일깨워주는 경종이 되었어요. 매 순간 감사하며, 행복함 깊이 느끼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확실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책 좋아하는 약간의 생활치이자, 허당 불량 주부인데, 그 불편함을 다 참아 주고 오히려 저의 이런 모습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남편에게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낍니다.  엄마로서도 저는 무심한 편이라서, 오죽하면 딸이 자신의 '친정엄마'는 아빠라면서, 아빠가 큰딸, 작은딸 키운다고 고생하셨다고 하네요. 

크게 행복하지 않았던 유년시절을 보낸 저는 약간의 허무주의자였는데, 이렇게 따뜻하고 넉넉한 사람을 만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로또' 라고 아들, 딸에게 자주 얘기합니다. 

그이와의 연애시절 저는 수선화 노래를 그이에게 불러주곤 했어요. 저에게는 왠지 그 노랫말이 남편을 떠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수 선 화         -김동명-

그대는 차다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날으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 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붙일 곳 없는 정열을

가슴에 깊이 감추이고

찬 바람에 쓸쓸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

또한 나의 작은 애인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야!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그이와 함께 하는 하루 하루, 매 순간들이 정말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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