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감사합니다.

늘 고마운 그대 (2)

아리아리짱 2019. 3. 21. 07:16

 

 

그렇게 둘째를 낳고 남편은 직장 생활 열심히 하고, 저 또한 전업주부로 아이들 육아를 하면서 책읽기와 영어공부를 계속 했습니다. 증권시장의 활황으로 연이은 야근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의 곳곳으로 다니며 여행을 함께 하며, 많이 보여주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며 야구장과 축구장도 부지런히 데리고 다니는 자상한 아빠였어요. 

당시 증권시장의 호황으로 증권사 직원들은 우리사주 제도로 다들 큰 부를 이룰 수 있는 행운의 시기여서, 다른 직장인들과 비교해서 내집마련도 쉬웠으며, 경제적 안정을 빨리 찾았어요.

그렇게 부지런하고 듬직한 남편과 무럭무럭 잘크는 아이들을 키우며 이런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들이 계속 되리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IMF 즈음 남편은 본의 아니게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남편에게 큰 시련의 시간이었죠. 남편의 움추림이 많이 걱정 되었지만, 잘 견디고 다시 비상 하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이 시작 될 즈음 저도 맞벌이를 해서 힘든 짐을 나누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면서 일을 시작 했습니다.

남편은 이것 저것 시도는 해 보았지만, 크게 용기내어 뭔가 규모있는 장사나 사업은 엄두를 내지 않고, 그냥 자기가 감당 할 수 있는 그런 일만 찾아 하려고 하는 모습이 많이 답답했어요.  자기 동기들은 지점장으로 여유있는 생활을 계속 누리는 모습을 비교해 볼 때면, 큰 산처럼 느껴 왔던 남편이 자꾸 작아 보이는 모습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저의 가정경제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저의 목소리는커졌고, 남편은 저의 압박(구박)에도 그냥 묵묵히 견디고, 한결같이 저와 아이들에게 관대한 사람으로 자신의일을 계속 했습니다.

 남편의 동기들이 50대 중반이 되니 하나 둘 퇴직을 하면서 그냥 집에서 쉬는 경우가 많아 졌어요.  넉넉한 퇴직금도 있지만 체면상 자잘한 일은 엄두내지 않는 경우도 있구요. 그리고 경험 없는 분야의 일을 벌여서 그나마 퇴직금을 날리는 경우도 보게 되면서,

기대에 비해 야망없던 50대 때의 남편이 한 때 미웠지만, 계약직이지만 60이 넘어도 성실히 날마다 출근하는 모습에, 남편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 하면서 제 마음도 많이 편안해졌어요.

사실 저는 불교 학생회, 청년회를 다니며 마음공부를 찾아 헤매였고, 마음의 평화가 쉽게 오지 않아 친한 친구의 삶의 모습에 교회와 성당도 나가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찾고 헤맨 저의 마음의 그릇보다 남편은 아무런 종교를 갈구하지 않고도, 더 깊은 마음의 평화와 수양이 되 있는 것 같아요. 옛날의 영화에 비해 현실은 많이 소박 한데도 그의 마음의 근육은 튼튼하여, 주어진 현재를 감사하는 마음과 평화가 흔들림 없이 크고 깊은 강이 되어 흐르고 있는것을 느낍니다. 

남편은 타고난 깊은 이해심과 부지런함으로 직장 동료에게도 인정받고 존경받는 상사였어요. 그런 사람이니까  20년이 지난 옛 동료들이 집안의 대소사에 아직도 다 와주시는 것이겠죠. 그런 남편의 좋은점을 되새기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 갈 즈음 어느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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