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김진애의 도시이야기

아리아리짱 2020. 6. 26. 06:00

(김진애/ 다산초당)

도시 건축가 김진애 작가를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쟁쟁한 '알쓸신잡'의 출연진 가운데 전혀 밀리지 않는 멋진 분이셨습니다. 해박한 전문 지식으로 빛나는 유일한 여성 참가자였다는 것도 매력이었습니다. 책날개에 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를 덧붙입니다.

김진애 삶의 테마는 사람이고, 그의 지적 뿌리는 도시와 건축이다. 건축으로 시작해 도시로 넓혀 공부하고, 현장 실무를 넘어 다양한 저작 활동과 정치 행위로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정의한 '활력적 삶( vita activa)'을 살아가려 애쓴다. 그래서 김진애는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쓴다. 항상 사람을 가운데 두고.
 김진애에게는 꼬리표가 많다. 20대엔 건축학도로 서울대 공대 800명 동기생 중 유일한 여학생으로, 30대엔 미 MIT도시계획 박사로, 40대엔 <타임>지가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인' 중 유일한 한국인으로, 50대엔  열정적인 18대 국회의원으로, 60대엔 <김어준의 뉴스공장>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의 유쾌한 코너지기로, 또한 <알쓸신잡>의 첫 여성 출연자 등으로. 김진애의 별명은 '김진애너지'다.
 김진애는 일 년에 한 권 꼴로 책을 쓴다. 그가 전해주는 사람과 인생과 성장 이야기, 여행 이야기, 여자와 남자 이야기, 책 이야기, 집 이야기, 건축이야기, 도시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까?

 

도시 건축가로서 뿐만 아니라 다독, 다작가로서 <왜 공부하는가>, <한 번은 독해져라>, <여자의 독서>를 통해 거침없이 글을 쓰신 작가의 매력에 푹 빠집니다.

책을 읽으며 건축가 김진애 작가를 통해 도시 건축물을 섬세하게 인문학적으로 살피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작가는 정조 대왕의 수원화성과 창덕궁의 연못 부용지에 있는 주합루에 대한 각별한 찬사를 표현했습니다. "정조가 가끔 꿈에 나온다"라며 특히 인간인 정조대왕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함께.

자신을 긍정하는 태도를 길러가는 과정에서 자존감을 한껏 높이는 경험이란 아주 소중하다. 일종의 임계점을 돌파하는 느낌, 끓는점에 도달하는 느낌이다. 맹목적인 자화자찬이 아니라 못마땅함과 비판적인 시각과 벗어나려는 오랜 몸부림 끝에 찾아오는 경험이다. 나에게는 행운처럼 인물과 도시와 건축이 같이 왔다. 정조와 그의 신도시 수원화성 그리고 그의 건축 공간 주합루다. (130쪽)

정조가 매력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완벽한 인간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인간'이라는 매력이 하나, 
'갈등과 트라우마를 안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뛰어넘은 대승적인 무엇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매력이 다른 하나다. (131쪽)

 

작가의 안내를 받으며 수원화성에 관한 축성 과정과 그 의미를 해석하는 설명을 알아가니, 도시란 규모가 아니라 콘셉트 크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수원화성의 세계문화유산으로의 그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합루 또한 우주와의 합일을 꾀한다는 뜻을 가지며, 작은 공간에 큰 뜻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그 공간이 왕족의 로맨스가 싹트는 풍류 공간으로만 인식하는데, 정조는 그 공간에 왕의 도서관인 규장각을 두어 대신들과 토론하였으며, 인재를 발굴하고 국정을 구상하는 공부의 공간으로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눈을 따라 그 두 곳을 꼼꼼히 현장 방문하고 싶어 집니다.

환경 도시로 유명한 독일 프라이부르크에는 태양광과 신재생에너지 외에도 바닥의 포장재를 자갈돌을 얇게 썰어 박아 넣은 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길바닥을 장식한 고유한  문양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슈톨퍼슈타인' , 독일어로 '걸림돌'이라고 불리는 작은 황동판이 곳곳에 박혀 있습니다. 그것은 나치의 광기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 생년월일, 추방 연도 또는 사망연도 등을 기록하여 그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장치입니다. 1992년  한 조각가가 만들기 시작한 슈톨퍼슈타인이 전 독일에 퍼지고, 또 전 유럽에 퍼져서 이제는 7만 여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것 또한 섬세한 작가의 감성으로 알려 주어 새롭게 알았습니다.

삭막한 도심 생활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가로수의 역할이 큽니다. 초록이 빛나는 요즘은 그 싱싱한 잎사귀 사이로 심심찮게 날아드는 새들도 쉽게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도심의 빈 공간에 한 그루의 나무라도  더 심어야 하는 이유를 작가님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십니다. 

도시의 미세 기후 조율에는 식물만 한 게 없다. 식물을 심는다는 것은 딱딱한 포장이 아니라 흙으로 덮인 면적이 늘어난다는 뜻이고 도시살이에 적응한 곤충과 새 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뜻이다. 습도 조절이 된다는 뜻이며, 산소가 많아지고 이산화탄소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늘이 생기고 나뭇잎들의 공기 정화 기능이 발동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그루 나무를 볼 때마다 우리는 이 척박한 도시 환경에서 살아남은 장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고마워해야 한다. (201쪽)

 

'도시는 모쪼록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라고 저자는 시종일관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여행이듯 도시도 여행이라고 정의하면서요. 인간이 그러하듯 도시 역시 끊임없이 그 안에서 생의 에너지를 찾아내고 새로워지고 변화하며 진화해나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도시를 작가의 눈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들여다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