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아리아리짱 2020. 4. 29. 06:02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 장수연/like-it)

저자는 MBC 라디오 프로듀서이자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꿈꾸는 라디오>, <정오의 희망 곡>등을 연출하면서 피디로서, 사회인으로서, 엄마로서 겪는 치열하게 사는 일상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면서 감동의 에세이로 들려줍니다. 라디오 피디는 세상을 읽어내어 애청자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주는 사람이라서 저자가 써 내려가는 글 행간 사이로 보여주는 예리함과 섬세함이 잘 전해져 옵니다.

<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7 분짜리 짤막한 다큐를 진행할 때의 에피소드인 ‘개인을 보는 연습’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저자는 ‘이야기될 만한 사람’을 찾다 강원도에서 새들의 집을 지어주는 할아버지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됩니다. 젊은 시절 잘 나가던 직장인으로 벤처기업 CEO까지 지내시다 50대 이른 나이에 은퇴하여 ‘새집 짓는 목수’로 살고 있는 70대 어르신에 관한 글이었어요.

다큐의 인물로 정하고 나서 인터뷰 섭외가 쉽지 않아 넉살을 떨어가며 자칭 감언이설로 어르신을 꼬드겼답니다. 연세가 일흔이 넘으셨다고 해서 말투는 자연스레 동네 노인정 할아버지 대하듯 ‘친한 척’ 접근하는 말투인 아이에게 하는 것과 비슷하여 존댓말인 듯 아닌 듯 어미가 실종된 상태로요. “어머 그러셨구나, 그러면 안 되지!, 아유 기분 나쁘셨겠네... 아유~ 대단하시네요, 어르신~!” 방문일정을 잡고 어르신이 쓰신 책을 구입한 저자는 아래의 책날개에 저자 소개를 읽게 됩니다.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경기중. 고등학교와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언론사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중견 컴퓨터 회사의 전문 경영인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오십이 넘은 중년의 어느 날 시골 생활을 하겠다고 서울 생활을 접고 처와 함께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계곡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장만하고 눌러앉아 가끔씩 서울을 오가며 살고 있다.

시골 생활을 하면서 목공 일을 즐겨하며, 특히 새집 짓는 데 몰두하고 있다.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책 한 권의 값을 늘 다른 물건의 값과 비교하기를 좋아하며, 사람들이 책을 열심히 사서 읽어야 이 나라가 행복해진다는 신념을 갖고 산다.

일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것은 잠시 기분이 좋은 일일 뿐 길고도 험한 일상의 삶에서는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이 세상의 삶이 그리 아름답고 순조롭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과 부조리, 모순된 삶이라고 여기는 비관주의자이지만, 술 한 잔을 마시면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낙관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대학 다닐 때까지 아이스하키 선수 생활을 했고 야구와 테니스 그리고 등산과 캠핑을 아주 좋아했다. 오십이 다 되어 한동안 산악자전거 타기에 심취하기도 했다. 한 때 화가를 꿈꾸기도 했으니까 아마 르네상스적인 인간이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주류에서 한발 벗어나 남들을 즐겁게 하면서도 자기의 믿음대로 마이너리티의 길을 가는 게 자기에게 지워진 운명이란 생각을 늘 갖고 산다.  

물 맑고 산 좋은 강원도 산골 동네에서 책 읽고 음악 듣고 개 두 마리 데리고 산보를 즐기며 친구가 찾아오면 흥겨운 마음으로 세겹살을 굽고 술을 즐겨 마시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새집을 만드는 것이 행복한 새집 짓는 목수이다.  -이 대우,<새들아 집 지어줄게 놀러 오렴>, 도솔 2006   (95~96쪽)

한마디로 입이 ‘뜨아’ 벌어지는 아름다운 소개 글이었던 것입니다. 저자가 아무리 취재하고 방송으로 만든다 한 들 이 글만큼 잘 표현할 수 없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대요. 그 소개 글도 본인이 직접 쓰셨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작가가 생각하는 시골에 사는 70대 ‘노인’이란 영화 <집으로>에 나오는 할머니 정도였던 것이었대요. 그런데 막상 이 분은 하루에 책을 6~7권 읽는 독서가에다 엘리트 지성인이었던 것입니다. 책을 실컷 읽고, 음악을 크게 마음껏 듣고 싶어 부부가 함께 시골의 한적한 생활을 자처하신 것이고요.

그러면서 저자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되돌아봅니다. 내가 저렇게 책을 많이 읽으신 분이고 엘리트 지성인이 아니었다면 저런 말투를 구사했던 걸 자각이나 했을까? 하면서요.

저자 역시 한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보는 시선 때문에 불쾌했던 경험이 많았는데 (남자, 여자, 비혼, 기혼, 아이있는 여자, 어느 대학 출신, 어느 지역 출신 등) 자신 역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피해자인 줄로만 알았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피해자도, 약자도,‘을’도 마찬가지라는 걸 간과했다. 편견 어린 말로 나를 속상하게 했던 사람들과 그 상황들에 대해 되짚어 보았다. ‘그 사람은 좀 별로야’, ‘시대가 바뀐 줄도 모르는 무식한 꼰대 같으니’ 욕하면서 상황을 선명하게 결론짓는 건 그를 악으로 나를 선으로, 그를 강자로 나를 약자로 구분 짓는 편한 생각이지만 사람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는 아니라는 걸,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는 찜찜함이 반증한다. 나는 내가 피해자였을 때 보다 가해자였을 때 인간과 세상에 대해 조금 더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나쁘고 자신에 대해서는 복잡하게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던데, 내가 나쁜 일을 했을 때 비로소 인간이 복잡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것 같다. 나의 가해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밤이다. (98~99쪽)

살아가며 우리는 개인을 집단으로 일반화하는 실수를 흔히 하는 것 같습니다. 그 개개인의 진정함, 소중함을 무시한 채 기존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쉽게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보는 연습’을 부지런히 해서 일반화의 실수를 줄여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