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나를 지켜준 편지

아리아리짱 2020. 2. 12. 06:12

 

<나를 지켜준 편지> (김수우. 김민정/열매하나)

20대 청년과 50대 시인이 ‘백년어 서원’을 인연으로 1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계간지 <백년어>의 창간호부터 두 분의 편지는 시작되어 10년을 이어온 것입니다. 김수우 시인은 백년어 서원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백년어 서원’과 관계되는 강좌와 책들이 쉬 인연이 닿습니다.

이 책은 2020 ‘원북원부산’ 후보도서 100권 중 한 권입니다. ‘원북원부산’은 ‘책 읽는 도시 부산’을 목표로 2004년 출범한 범시민 독서 생활화 운동입니다. 현재 부산의 41개 공공도서관이 공동주관하고 있습니다. 부산 시민들이 해마다 투표에 참여해 가장 읽을 만한 원북원(한 권의 책)을 부문별(일반, 청소년, 어린이)로 선정합니다. 선정된 한 권의 책으로 저자 초청강연, 독서토론회를 하며 시민들의 독서를 고양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원북원 후보 도서 100권의 안내 책자를 참고 하여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합니다. 그 중의 한권이 <나를 지켜준 편지>입니다.

20대 청년 김민정은 50대 멘토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다음의 의미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직업인으로 사는 일은 자본주의를 살아 내는 일이었다. 인문학적 자아가 휘둘리기 쉬웠다. 숫자 앞에 내몰리고, 시간은 숨 가쁘게 흘렀다. 그래도 계절에 한 번, 편지를 쓰는 것으로 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때때로 벅찼지만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자아는 내가 가장 지키고픈 내 모습이었다. 일상에서 가다듬는 노력이 부족할지라도 선생님께 글을 쓰는 내가 시간의 축적과 함께 단단하게 영글기를 바랐다.(...) 형형한 눈빛으로 삶을 먼저 살아 본 자의 지혜를 나누어 주는 사람. 선생님을 떠올리며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구체화한다.(...) 어린 나의 글은 부끄럽지만 선생님의 글은 그 때의 나처럼 불빛을 찾는 청년들에게 가닿아 더 큰 의미를 발현할 거란 믿음으로, 내 청춘의 편지를 세상에 보낸다. (프롤로그 8~9쪽)

모든 것이 불안정한 시기인 고뇌하는 청년 김민정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질문들의 답을 구하며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아 나갑니다. 그 길목에서는 시인인 김수우 선생님의 지혜롭고 넉넉한 말씀들이 많은 격려가 되고요. 믿고 따를 수 있고, 구체화된 모습으로 닮아가고 싶은 어른이 있다는 것은 행운일 테입니다.

시인 김수우 선생님은 글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는 힘을 말한다. 이 성찰이 실천으로, 이 실천이, 공존의 가치로 이어진다. 모든 고뇌의 발견은 공감의 상상력이 된다. 공감하는 감수성만이 사랑을 발견하고 공존이라는 비젼을 선택한다. 때문에 모든 공부의 정점은 글쓰기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 담긴 나눔 들은 ‘인간이 고뇌하는 별’임을 충실히 보여준다. 극단적인 물질시대를 살아가지만 어떻게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믿을 것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지키는 건 무엇일까. 그 영성적 가치를 기억하고자 했다. (프롤로그 11~12쪽)

세대를 건너뛰는 30년 차이를 둔 두 분이 주고받은 우정과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글들은 주옥같은 표현들로 넘칩니다. 청년은 청년대로 날 푸른 시선으로 사회와 현상들을 깊은 고뇌의 사유로 표현합니다. 시인의 글들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가슴 따뜻이 적셔주고 응원해 주는 글들입니다.

사람관계로 괴로웠고 힘들었던 청년 김민정은 그 이유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며 다음과 같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치유책을 표현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야말로 ‘자발적 가난’이 필요하다고요. 기대를 내려놓고 곁을 내어 주는 것이 편하게 우정을 나누는 방법이겠죠. ‘나라면 아닐 텐데’ 말고 ‘너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 또 편해집니다. 그리고 천천히 관계를 풀려고 마음먹으면 조급함이 가시고 얼마간 평정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시간의 힘에 기대어 괜찮아 지곤 했어요.

이에 시인 박수우 선생님은 사람 가꾸는 법, 관계에 대해 민정씨의 고뇌에 공감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단독자입니다. 혼자 온길, 혼자 가는 것이고 그 사이의 모든 동행은 하나같이 축복이지요.(...) 사람에게 기대면 함께 넘어집니다. 사람은 그저 내가 사랑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사랑은 절대 기대는 것이 아닙니다. 동행이란 나란히 걷는 것이죠. 내가 홀로 서고, 상대방도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인연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22쪽)

깡촌 가난한집에 스무 살에 시집와서 한평생 칠 남매를 낳고 키워내신 시어머님의 주검 앞에서, 연로하고 병들어 오그라든 작은 체구, 소쿠리만한 주검 앞에서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희생적 사랑을 시인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 그것들은 언제나 성실한 노동과 긴 기다림과 통증 깊은 희생과 눈물 묻은 기도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요소들이 우주를 무한히 생성해내는 참 에너지겠지요.( 176쪽)

세상이 정한 청춘의 목표가 ‘안정’ 하나로 귀결 되어 버렸다는 생각을 하는 청년과 그 것을 ‘고민하고 괴롭다는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인문적 실천’이라는 시인이 주고받은 말들입니다.

공존의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공부하면서 연대해 실천해 나가는 형식, 이것이 지상에 살아남은 자의 꿈이기에 시인은 누구든지 와서 함께 공부하고 어깨를 비비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바로 ‘백년어 서원’이 그런 공간인 것입니다.

공존의 가치를 가슴에 담아 그것이 씨앗이 되어 뿌리내리길 바라며, 이 책을 소장하여 읽고 또 읽을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