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페인트

아리아리짱 2020. 2. 11. 06:22

 

<페인트>(이희영/창비)

창비 청소년 문학책은 생각꺼리를 주면서 읽는 재미가 큽니다. 청소년 소설은 부담 없어서 <오디세이아>를 읽다가 길을 헤맬 때면 함께 읽은 책입니다.

페인트는 parents' interview에서 두음을 따온 합성어 <페인트>입니다. 말 그대도 부모 면접을 통해서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 것이며, 각자의 손으로 미래를 스스로 색칠한다는 중의적 뜻을 포함합니다.

미래의 인구 급감의 시대에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기 여의치 않다면 국가가 전부 지원해서 양육 할테니 아이들을 부담 없이 많이 낳으라는 고육지책의 시스템인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영유아와 청소년들이 정부의 지원으로 ‘NC(National Children)'센터 에서 자라며 부모 면접을 통해 아이의 선택으로 각 가정으로 입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입양되어 가족을 이룬 후 부터는 각자의 이름도 가질 수 있으며 ID카드의 NC 출신이라는 표식도 사라집니다.

열아홉 살이 되기 전까지 각 가정에 입양되지 않으면 NC 출신의 꼬리표를 영원히 매단 채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세계에서도 고아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사는 삶은 사회의 차별과 차가운 시선들이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한 반에 고아가 한두 명씩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마른 나뭇잎처럼 퍼석한 얼굴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어요. 모두 힘든 서민 살이었어도 대부분이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다니는 시기였는데 검정고무신이 표식 아닌 표식이었던 것입니다. 겨울에 검정고무신 신은 발을 보며 마음조차 시렸던 기억이 납니다. 허공을 헤매는 듯한 그 아이들의 텅 빈 시선이 아직도 기억에 머무는 것은 그들의 삶이 외로움과 결핍이 컸던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자라서 가정을 일구고 자식을 낳아 어쩌면 손주까지 둔 할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가족을 일구어 따뜻한 울타리의 가정들을 이루었길 바랍니다.

 

<페인트>에서의 아이들은 NC입소한  달에 숫자를 붙인 이름으로 불리어집니다. 부모님과 가족의 사랑은 없어도 국가의 지원과 시스템으로 가디언들의 감독과 보호 아래 당당한 한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제누 301은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주인공 아이입니다. 친부모님과 함께 하는 삶도 자신의 처지 보다 더 외롭고 불행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인 것입니다. 그는 자식을 사랑으로 원해서가 아닌 국가에서 주는 정부지원금이나 수당을 타먹기 위해서 입양하려는 양부모들도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인 것입니다.

열아홉의 퇴소 날이 몇 년 남지 않은 제누 301입니다. 가디언 선생님들과 NC 센터장은 어떡해서든지 제누 301에게 양부모님을 맺어주기 위해 페인트를 주선하지만 제누301은 생각이 많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한다는 것은 부모가 아기를 낳은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자기 아기에 대해서 엄청난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보다는 잘났으면 좋겠다는 마음 정도는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 환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가고, 몸이 자랄수록 부모들의 바람은 더 소박해지겠지. 그저 다른 아이들만큼만 하기를, 그저 건강하기를, 그저 평범하기를....

부모에 대한 우리의 기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만날 부모만큼은 진심으로 아이를 아껴주고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지성과 교양을 갖춘, 완벽한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 그러나 몇 번의 페인트를 거치면서 알게 된다. 우리도, 그들도, 조금씩 문턱을 낮추고 어느 정도 타협하는 심정으로 변한다는 것을 말이다. (184쪽)

어른이 되어도 어린 시절 겪었던 아픈 기억들은 내면의 아이가 되어 현재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의 아이를 달래어 위로하고, 잘 견디어 주었다고 쓰다듬으면서 어른의 삶, 부모의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책 말미의 작가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되어가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와 함께 놀고 즐기면 된다. 글쓰기가 늘 즐겁지만은 않듯 근래 들어 아이와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가 잦았다. 하지만 맑은 날만 계속되면 세상은 사막으로 변한다.(200쪽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