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감사합니다.

나의 영어사 (1)

아리아리짱 2019. 3. 7. 09:07

  나의 영어에 대한 애증의 흑역사를 말씀 드리자면 저의 중학교 1학년 때 첫영어 수업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는 중학교부터 영어를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우는 시절 이어서 중학교 입학전 겨우 알파벳을 읽고, 쓰는 정도로만 해도 나름 선행학습이었던 시절이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첫 영어 수업시간 을 맞이 했는데 영어선생님이 칠판에 크게 YOU 를 쓰시더니 저에게 읽어보라고 질문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자신있게, "와이 ,오우, 유" 라고 크게 읽었습니다. 알파벳은 겨우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랬더니 선생님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시면서 저보고 앉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내가 잘못 읽었나 하고 의아했습니다. 선생님은 이어서 다른 학생에게  읽어 보라고 하셨고, 그 친구가"유~"라고 읽자, 표정이 밝아지면서 "그래, 맞아." 하시며, "중학교 오면서 어째 you 도 못 읽냐면서 그렇게 준비없이 학교에 왔냐 "하시는 거예요. 완전 요즘 아이들 말로 '멘붕'이었어요. 많이 부끄럽고, 창피 했어요. 당시는 학원이 흔하게 있던 시절도 아니라서 입학전 알파벳 정도 아는 것도 언니 오빠가 있는 사람만 가능한 선행 학습이었고, 아주 집이 잘 사는 아이들은 대학생 과외를 드물게 하던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그 창피를 만회하기 위해서, 다음 질문시는 대답을 잘 해볼려고 수업시간 집중하고, 열심히 노력 했는데, 그 이후로는 한 학기 내내 한번도 저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것은 물론, 눈길도 잘 주지 않으셨어요.  선생님이 싫어지니, 영어에 대해서는 완전히 흥미 상실이었고 영어 자체가 싫어진 것입니다. 그 선생님은 서울대 출신의 50대의 선생님이었는데, 학생들에게 ABC 부터 수업하시는게 귀찮으셨는지, 어쨋든 저에게는 학생의 기를 꺽는 최악의 영어 선생님이셨어요.

 저는 중1, 2학년 때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과 같이 그다지 학교 공부에 매달리지 않고, 방과후 자유로이 놀거나 집안일 거들며, 평범한 학교 생활을 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책읽기를 좋아해서 국어 성적은 상위였고, 성적은 중상위를 유지했어요. 

  그러다 중3이 되면서 수학 조만용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셨어요.선생님은 고등 평준화 제도 전까지 입시성적 좋은 중학교에 계시다 저희 학교로 오셔서, 고등학교 입시 준비하던 시절의 습관 그대로 저희반만 아침에 1시간, 방과후 3시간 정도 자습시간을 감독하시며 의무적으로 공부를 더 하게 하셨어요. 부모님들은 좋아 하셨고, 처음에 저희들은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공부하니 늘 제자리던 성적이 쑥쑥 오르는 것입니다. 담임 선생님은 완전히 제 인생의 전환점인, 공부를 재미 있어하고 좋아하게 만들어 주신 최고의 선생님이셨어요.

  당시는 매달 시험을 치는 월례고사 시절인데, 첫달에 반 65명중에서 18등(1, 2학년 때 와 같은등수), 둘째달에는 반에서 7등을 한 것입니다. 짝지는 2등을 했구요. 셋째달 월례고사때 선생님이 번호 순서대로 앉아서 시험치는데 앞자리 짝지와 책상을 더 멀리 띄우라고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이 성적이 많이 오른 저를 '컨닝'을 하지 않았나 라고 의심하는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해서, 어쨌든 짝지 보다 성적이 좋아야 하고, 그래야 선생님의 의심을 없앨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음 달에는 제가 반에서 4등이고 짝지는 8등을 했어요. 그 이후부터는 거의 제가 반에서 2등을 유지 했고, 반에서 1등이자 전교 1등인 친구가 있어서, 반에서 1등은 못 해봤지만 전교 600여명 학생중에 8등까지 하면서 완전히 선생님의 오해를 해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적이 오를 동안 국,수,과,사,기타 과목은 거의 만점에 가까운데 영어는 2년 동안 팽겨쳐 놓은 댓가를 톡톡히 치르면서 성적이 중간 쯤에 머무는 것입니다.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 막막하고, 완전히 저에게 영어가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없는 듯 영어 성적은 제자리였고, 결국 제 발목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어 성적으로는 인문계를 진학해도 학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의 국립대나 교육대를 갈 수 없을 것 같았고, 집안 형편도 여의치 않아서 여상으로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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