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아빠의 수학여행

아리아리짱 2020. 1. 23. 06:16

 

<아빠의 수학여행>(김민형/황근하 옮김/은행나무)

저자인 김민형 교수는 옥스퍼드대학교 수학과 교수이자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초빙 석좌 교수입니다. 저자에 대한 소개의 글은 다음의 글로 대신합니다. 

세계적인 수학 석학이자 아들에게는 더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 김민형 교수가 가족과 떨어져 영국과 독일에 머무르는 여름 동안 홀로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아들에게 쓴 편지를 모았다. 낯선 곳에서 얻는 기쁨과 놀라움을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편지에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이야기와 함께 평소 아들과 주고받았던 철학, 음악, 미술, 문학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생각들이 따뜻한 문체로 펼쳐진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 중에서)

 

책 제목이 ‘아빠의 수학여행’이라 수학에 관한 책인 것 같아 패스하려다가 ‘아빠가 아들에게 꼭 알려 주고 싶은 세상의 모든 질문들’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수학여행은 말 그대로 현장학습인 수학여행의 의미가 더 큰 것입니다.

저자는 수학은 물론 인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을 가진 수학자입니다. 학술여행을 하며 아빠의 눈으로 유럽의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을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설명하며 전하는 글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빠가 초등학생 아들에게 이렇게 깊은 지적인 대화를 이끌어내고 할 수 있다는 것에 저는 그저 감탄했습니다.

모든 것을 구성하는 아주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건 곧 모든 것이 본래 같다는 말이잖아. 결국 우리는 꽃 한 송이나 돌멩이, 별이랑 본질적으로 같은 거야. 우리는 같은 건물을 이루는 벽돌들인데 그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조합된 것뿐이니까. 어쩌면 별개의 대상으로 분리하는 것조차 임의적인 거야. 왜냐하면 내 살 갗은 공기에 닿아 있고 공기는 저 돌멩이에 닿아 있고 별에서 오는 에너지로 피어난 꽃에도 닿아 있으니까. (144쪽)

그러면서 저자는 다음의 블레이크의 시 한 편, 첫머리를 소개하며 그 날의 편지를 마무리 합니다.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보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의 무한을 붙잡으라

찰나속의 영원을. -블레이크-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음악을 비교하면서 아들에게 들려주는 아빠의 슈베르트 음악에 대한 얘기입니다.

슈베르트의 노래가 충격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이유가 또 있는데, 그건 바로 그가 피아노 파트를 아주 진지하게 여겼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의 가곡을 ‘예술가곡’이라고도 해. 그림으로 치자면 박물관에나 걸릴 법한 깊이가 있다고 할까. 그 봄노래를 주의 깊게 들어보면 피아노 반주가 아주 풍부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목소리가 부드럽게 미끄러질 수 있도록 전체 노래를 받쳐주는 톤과 배경이 아주 섬세하지. <마왕>에서는 피아노의 광적인 박자감이 극적인 멜로디와 맞물려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잖아. <보리수>에서는 훨훨 날리는 멜로디 때문에 저 먼 고향 집의 익숙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고. 노래를 이렇게 정교하게 공들여 만드는 게 낭만주의의 특징이란다. 낭만주의 시는 인간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기 때문에, 슈베르트 같은 작곡가들이 시를 읽고 낭만주의의 원천인 어둡고도 숭고한 에너지를 공유 했다고 하지. (226쪽)

그리고는 슈베르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 되는 프랑스 혁명등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슈베르트의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성격과 세상을 향한 그의 깊은 사랑에 대한 설명도 하면서요.

 

종교에 대한 아빠의 의견을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줍니다.

자연과 인간,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진정한 사랑에 대한 심오한 질문들은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스승이 부처이건, 예수이건, 루터이건, 바오로 성인이건, 마호메트이건, 소크라테스이건 언제나 사람들을 같은 지점으로 데려간다는 거지. 그러니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이 근본적으로 다르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 건지 아빤 잘 모르겠어. ( 258쪽)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군가 탓할 사람을 찾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아들에게 얘기 합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착한 사람도 나약하고 비열해 질 수 있기에 서로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문제에 대해 서로를 탓하기도 한다고 얘기해 주면서요.

아빠는 배움의 중요성과 배움의 자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우리가 더 많이 배울수록, 진정한 이해는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 너머에 놓여 있다는 게 더욱 분명해지는구나. 여행 혹은 책을 통해 세계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진실의 문으로 곧장 걸어가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마지막 발걸음을 떼려면 결국은 자기가슴과 영혼을 들여다보아야만 해. 그래야 말과 개념이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신비스러운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단다. (259쪽)

 

출판사에서 ‘자녀교육’의 주제로 기획하고 이 책을 출간한 것 같은데, 저자는 정작 이 책의 근간이 되었던 아들에게 편지쓰기는 오히려 저자 자신을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떨어 지내야 했던 동안 아빠의 외로움을 달래주기에는 편지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고 하면서요.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눌 생각에 더 공부도 되었고 자기반성 시간도 가지면서 더 성장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교육서로 자녀들이 읽기보다  아빠들 특히 '기러기 아빠들‘이 이 책을 읽고, 떨어져 지내는 자녀들과 가족들에게 편지나 이 메일을 쓰기를 권합니다. 가족에게 글쓰기는 생각보다 훨씬 큰 위로가 되고 가족에 대한 사랑 또한 커진다고 하면서요.

학문의 한 분야에 특별히 뛰어난 사람은 다른 부분은 조금 허술한 구석도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김민형 박사님은 수학 뿐 아니라 우주와 삶에 대한 통찰이 뛰어나십니다. 무수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그 여정을 아들과 함께 함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책 감사, 강의감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밀레니얼의 반격  (10) 2020.01.30
나의 책사랑, 짝사랑  (16) 2020.01.29
그림 속에 너를 숨겨 놓았다  (12) 2020.01.22
반응하지 않는 연습  (14) 2020.01.15
꿈꿀 권리  (10) 2020.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