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데미안

아리아리짱 2019. 12. 20. 06:00

 

<데미안> (헤르만 헤세/ 정돈영옮김/ 교육문화연구회)

지난 주 손녀의 탄생 덕분에 두 번의 수원행으로 읽고 싶은 책들이 쌓였습니다. 쌓인 책들 사이로 저 또한 내면의 나를 향한 여행을 떠납니다. 이번 주 독서모임 ‘큰솔나비’ 나눔 책은 <데미안>입니다.

이른 새벽 <데미안>을 읽는 이 시간의 고요함이 새삼 충만함으로 다가옵니다. <데미안>은 학창시절 읽어서 어렴풋이 잔상이 남아있었는데, 새로이 읽으니 글귀가 하나하나 도드라져 다가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며 니체의<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겹쳐집니다.

모든 변화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싱클레어의 소년기에서 성년기에 이르기 까지 그 성장 과정의 곳곳에서 자신을 향한 끝없는 번민과 갈등을 엿봅니다. 작가의 표현처럼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장애가 많은 일은 없음을 공감합니다.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은, 그 의 삶이 하나의 다리일 뿐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 변하고 몰락하기 때문이다. 나는 몰락 이외에는 살아갈 방도를 모르는 자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피안을 향해 건너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16쪽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원시적인 감정조차도 적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작업은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 광분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분열된 영혼의 몸짓에 불과했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뛰쳐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다. 세계는 파괴되어야만 했다. (212쪽-데미안)

우리에게는 모든 신앙과 모든 구원론이 전부터 무용한 것으로, 죽은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무와 운명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은 단 한가지뿐이었다. 즉 우리들 저마다가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우리 속에 살아 있는 자연을 올바르게 대우하여 자연의 뜻에 맞도록 살면서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오는 모든 것에 대해서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90쪽-데미안)

우리 내부의 세계는 매일 혁신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그걸 잊지 마십시오! (147쪽-데미안)

 

진정한 자아를 향한 자신에게로 이르는 추구의 길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삶의 변화를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부수고 전진해야만 가능 한 것이니까요. 새가 알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듯 수고와 고통이 따르지 않으면 변화는 없는 것입니다.

싱클레어가 에바부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며, 안으려할 때의 표현들입니다.

그는 그가 잃었던 전 세계가 자기에게로 끌어 당겨져 있음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그 세계가 그의 앞에 서서 그에게 몸을 내 맡겼다. 하늘과 숲과 강물과 그 모든 것이 새로운 빛으로 신선하게 그를 향해서 왔다. 그는 단 한명의 여자를 얻는 대신 전 세계를 가슴에 안았다. 하늘의 별은 그의 내부에서 빛나며 그의 영혼에 쾌락을 주었다. 그는 사랑했고, 그 결과 자기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상실하기 위해서 사랑한다.!( 194쪽-데미안)

싱클레어가 그토록 간절히 사랑했던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은 싱클레어가 가고자 하고 찾고자 하는 내면의 자아, 내면의 상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