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아리아리짱 2019. 11. 8. 06:27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고미숙/북드라망)

나이가 들수록 고미숙 선생님의 강의가 귀에 쏙쏙 들어와 마음에 새겨집니다. 자본주의의 성장일로의 ‘돈’과 ‘성과’에 중점을 둔 사고와 생활방식이 우리 삶을 지배하여 진정한 삶으로부터 너무나 빗겨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선생님은 공부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자식교육, 가족부양의 부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중년의 시간이라고 하십니다. 이제 공부를 제대로 해 볼 시간이 된 것입니다.

내가 걷는 한 걸음이 전 우주의 파동을 바꾼다는 일념으로 지식, 지성, 지혜의 앎의 삼중주를 울리며 공부의 길로 나아갈 것을 강조하십니다.

모든 잣대를 ‘돈’에 두어 성과와 결과에 따른 가치를 따지는 어리석은 틀에 갇힌 현대인의 몽매함을 날카롭게 깨우쳐주십니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는 성장의 신화 속에서 끊임없이 결핍을 생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에 따르면 “'발전의 미신'은  호모 사피엔스의 의식과 감각을, 마땅히 가져야하는 것을 갖지 못한 궁핍한 인간 곧 ‘호모미세라빌리스’(비참하고 쓸모없는, miserable)의 의식과 감각으로 탈바꿈 시켰다.”를 인용하십니다.

광고와 드라마, 인터넷등 자본의 전방위적 유혹에 영혼까지 잠식되어 Let it be로 ‘내비두’면 자본에 의해 다 포획되기 쉬우니 ‘Let it be!' 보다는 ’Let it go!'(자기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로 자본의 공세와 유혹에 맞 짱을 뜨면서 생성의 리듬으로 창안의 길로 나아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참다운 공부란 삶을 돌보는 기예 곧 양생술이니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사람에 대한 탐구가 심오한 공부의 길이니 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을 또한 말씀하시면서요.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각종 질병의 원천은 고립감이다. 쉽게 말해 친구가 없어서 일어나는 증상이다. 아니,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현대인은 친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각종 상담처나 병원을 찾아다니며 하소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것도 시간과 비용을 엄청나게 지불하면서! 이런 모순을 타파하려면 일단, 친구라는 존재가 생명활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또 그 사람과 맺는 관계가 곧 나다! 이것이 운명의 법칙이다. 그런 점에서 배움이란 그 자체로 ‘공동체적 신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156쪽)

성장기 그토록 오랫동안 잠도 줄여가며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성적중심의 학교생활은 친구의 소중함도 느낄 사이 없이 오로지 경쟁자로만 인식하게 하는 각박함을 초래합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을 키울 그 소중한 시간에 각자도생의 치열한 경쟁은 우리청소년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 지식은 인생에도 그다지 쓸모가 없는데도 말이지요.

선생님은 또한 노인의 삶에서도 필요한 건 ‘부’가 아니라 ‘관계’임을 강조 하십니다. 관계의 결핍만큼 서러운 것이 없으니 고립감으로 벗어나기 위해 ‘연결과 소통’을 향한 노력을 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연결과 소통’을 위해서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공부해야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곧 경전이고 텍스트라고 하시며 신영복 선생님의 다음 글을 인용하십니다.

“내가 징역살이에서 터득한 인간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봅니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을 최고의 ‘독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에 나누어서라도 가능하면 끝까지 다 듣습니다. (신영복, <담론>,돌베개, 2015, 251쪽)

선생님은 화폐와 노동이 인간의 본성이거나 목표일 수 없으니 생명의 본성인 ‘다른 무엇’을 향해 나아가면서 자존감과 연대감을 가질 것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네 삶은 당연히 고해의 바다입니다. 삶은 그 고난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차피 그럴 바에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장자’의 출발점입니다.

이것을 얻으면 저것을 잃는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다면 ‘이것’과 ‘저것’을 조율하는 삶의 기예가 필요하다. 그것이 양생의 도(道)다. ‘정기신(精氣神)을 보존하고 본성을 잃지 않는 ’자기배려‘의 윤리! 그럴 때 비로소 낯선 세상과 거리낌 없이 맞짱을 뜰 수있다. 또 그 마주침 속에서 기꺼이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324쪽)

날마다 조금은 부족하고 서툴지만 진정한 삶을 향한 공부의 길을 나아가려는 나 자신을 응원합니다. 나를 “쓰담쓰담”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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