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훈의시대

아리아리짱 2019. 11. 1. 06:25

 

<훈의 시대>(김민섭/와이즈베리)

일, 사람, 언어의 기록<훈의 시대>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를 쓴 김민섭 작가님의 책입니다.

사전에 따르면 훈 訓은 言에‘말’이란 뜻이 있고 川에는 ‘따르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훈은 ‘(타인을) 말로 이끌어 따르게 하는 일’이고 ‘가르쳐 깨우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훈이 쓰이는 말로는 훈계, 훈련, 훈시, 훈육, 훈화, 가훈, 교훈, 사훈 등이 있습니다.

대학 시간강사의 현실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대리운전기사로 몸으로 부딪힌 삶의 현장들은 <대리사회>에서 삶의 치열함을 예리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힘이 큰 작가입니다.

저자는 여전히 대리기사를 하면서 <훈의 시대>를 통해 몸으로 느끼는 거리의 언어를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몇 년 전 SNS와 인터넷상에서는 물론 언론에서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인 ‘김민섭을 찾습니다’가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그 김민섭이 바로 이 김민섭 작가인 줄 알게 되었어요.

작가는 대학에서 연구원과 시간강사 생활로 시간은 물론 경제적 여건이 빠듯한 형편에 해외는 가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에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끊습니다. 성수기의 반값도 안 되는 108,300원에 왕복항공권을 가지게 된 작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여행 2주 전, 출발일 전날 아이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어요. 아내는 그래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지만 작가는 갈등 끝에 항공권 취소를 결심합니다. 환불을 신청하니 여행사에서는 1만 8천원만 환불해 줄 수 있다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80퍼센트가 넘는 금액을 수수료로 떼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여행사 직원에게 화를 내거나 책임자를 바꿔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나오면서 내가 결심한 것 중 하나는 ‘나를 닮은 사람들’에게는 화를 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어쩌면 내가 선택한 훈이 되겠다. 전화를 받고 있는 여행사 직원도 나를 닮은 이고 그들에게 분노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몇 만원을 더 돌려받는다고 해도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내가 약간의 구제를 받는 것 뿐, 이 사회의 문화와 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그 분노는 잘 간직해 두었다가 모두와 함께할 기회가 있을 때 다시 꺼내기로 했다. 그러면 나를 둘러싼 이 사회가 아주 조금은 한 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34쪽)

다음의 조건이라면 티켓을 양도 할 수 있다는 여행사 직원의 얘기를 듣습니다.

‘1)대한민국 남성이면서, 2)이름이 김민섭이고, 3)서로의 여권에 있는 영문 이름의 스펠링이 완전히 같은 사람’

작가는 현금1만8천원을 돌려받는 것보다는 더 행복할 것 같아서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항공권을 드립니다.”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김민섭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흔한 이름 김민섭의 수많은 댓글 속에도 이틀째까지 일치하는 조건을 가진 김민섭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 중 평일에 혼자 여행갈 수 있는 영문자 일치하는 김민섭 찾기는 불가능 할 지도 모른다는 의견들이 많았어요.

3일째 되는 날 드디어 영문자 일치하는 1993년생 김민섭이 나타납니다. 작가보다 열 살 어린 대학에서 디자인 전공하는 학생이었어요. 졸업전시비용을 마련하기위해 휴학생인 것이었어요. 작가는 그 많은 등록금을 내고도 졸업을 위한 비용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80퍼센트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만큼이나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여행가기 적합한 김민섭이 나타난 것에 기뻐하며 양도 절차를 밟습니다.

그 때 또 아름다운 일이 생깁니다. 한 고등학교 선생님 이라고 하시며 항공권은 있지만 혹시 다른 부분의 여비 때문에 여행을 쉽게 가지 못할 수 있는 김민섭에게 2박3일의 숙박비 30만원을 지원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자신을 고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그는 이 여행의 숙박비를 부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학교에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아서 다른 부분의 여비 때문에 여행을 쉽게 가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이라고 하는 그의 정중함과 다정함이 놀라웠다. 우리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할 때 쉽게 거만해진다. 미리부터 생색을 내고 대가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김민섭 씨에게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이미 발견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사유하고 있었다. 그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나의 아이가 그를 닮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36~237쪽)

김민섭을 찾았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이런 동화 같은 일이 정말 벌어질 줄 몰랐다’며 서로들 댓글을 달고 기뻐했습니다.

정말 동화 같은 기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어떤 이는 그린패스권(1일 버스자유이용권)2장, 와이파이 포켓지원, 후쿠오카 타워입장권등의 지원이 이어진 것입니다.

급기야 카카오에서 정식 프로젝트로 메인페이지에 노출을 시켜서 더 많은 사람들이 김민섭씨를 도와 여행경비와 졸업전시 비용까지 이 청년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받습니다.

그래서 ‘1993년생 김민섭 씨 후쿠오카 보내기 프로젝트’가 카카오에 정식 오픈되었답니다. 2박 3일 동안, 278명이 254만 9천원을 후원해서 졸업전시 비용까지도 모으게 됩니다.

1993년생 김민섭은 작가 김민섭에게 사람들과 작가님은 왜 자신을 도와주었냐고 물어봅니다.

김민섭 작가는 말합니다. “그냥 당신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거예요. 그뿐 이예요.”

그 이후, 나는 이전과는 다른 나만의 훈을 하나 가슴에 안고 살고 있다. ‘당신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을 한다.(...) 나는 당신의 잘 됨이 나의 잘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계속 찾아보고 싶다.(241쪽)

이 일화를 읽고 마음 한쪽이 따뜻해져옵니다. 아직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로 다들 힘든 가운데서도 용기를 주고 잘되기를 바라면서 조건 없이 대가 없이 이렇게 곳곳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사회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저도 함께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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