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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공부 도로 아미 타불

아리아리짱 2019. 8. 27. 06:16

 

 (때이른 코스모스 다대포 해변공원)

 

남편은 엄청 애주가입니다. 말 그대로 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맛있게 마시는지 술 전혀 못하는 저도 저렇게 맛있으면 나도 한 번 마셔 볼까 생각이 들 정도로 술을 맛있게 즐깁니다.  

작년 큰 수술하기 전에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음주를 즐겼지만, 수술 후 약도 복용중이라 웬만하면 담배에 이어 술도 끊어주길 바라지만 그것은 저의 욕심이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시는 것으로 타협하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1주일에 두 번 정도는 마시려고 저에게 온갖 아부(?)와 핑계를 댑니다.

다른 부분은 또래의 남편들 보다 생각도 깨어있어 젊은 세대 못지않게 가사분담, 외조 등 부족함이 없는데, 술사랑은 도대체 그칠 줄을 모릅니다.

남편은 고약한 술버릇이 있답니다. 술을 먹고 폭력적이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기분 좋은 정도로만 즐기면 저도 참아주겠는데, 주량보다 조금만 더 마시면 과도한 장난 끼가 발동합니다.

이전에 비해 음주량은 줄었지만 취하는 정도가 커진 듯 사람 괴롭히는 장난이 갈수록 더 심해집니다.

저는 저체온증이라 에어컨의 냉기를 극도로 피하고 싫어합니다. 몸은 더워 땀이 나도 그 따뜻함(?)을 즐길 정도로 한 여름에도 선풍기가 크게 필요치 않는 요상한 체질입니다. 한의원에서는 일종의 산후풍 비슷한 증세라고 하고요.

그래서 여름철 에어컨 빵빵한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는 카디건을 가방에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은 필수입니다. 영화관 갈 때는 여름에도 무릎담요 챙기는 것도 필수이고요.

에어컨 냉기가 심하면 팔과 다리가 저리듯 오그라들면서 뼈까지 차가와 지는 듯 하며 컨디션과 기분이 급냉각 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더위 많이 타는 남편 입장에서는 엄청 불편한 체질인거지요. 그래도 평소에는 저에게 맞추어 주려 애쓰면서 에어컨도 27도 정도 설정하며 배려를 해준답니다. 그러다 너무 더우면 거실에 책상과 컴퓨터가 있는 관계로 제가 있고, 안방에서 혼자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러다 제가 자러 안방에 들어가면 에어컨을 끄고 잠들고, 남편은 거실로 나와 열대야 취침 버턴을 켜고 자는 것이 여름 일상이 되었어요.

문제는 안방에서 남편이 나오면 거실이 너무 더우니까 20분 전에 미리 켜줄 것을 부탁했어요. 저도 안방 들어가지 전에 미리 꺼줄 것을 동의하면서요. 그런데 지난 주 월요일 저녁 남편이 술을 마신 날, 거실에 에어컨 미리 켜 놓는 것을 깜빡 하고, 이젠 잘 테니 거실로 나가 달라고 한 것입니다. 거실로 나온 남편은 너무 더웠던 거지요.

안방으로 들어간 저는 에어컨을 바로 꺼도 너무 추웠고요.

예의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과 기분이 급 하강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은 술김에 깐죽깐죽(?) 장난으로 이불을 다 채 가면서, 미리 거실 에어컨 안 틀은 것에 보복(?)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완전 몸은 얼어붙고, 감정은 폭발 했습니다. 평소 교양 있게 살려고 애쓰는 것들이 다 무색할 정도로 꽥 고함을 지르고 화를 냈어요. 거의 이성이 마비될 정도였어요. 남편은 아차 싶었는지 이불을 다시 가져다주었고요.

하지만 후폭풍으로 미친 듯 고함지르고 화낸 자신에 대한 '자기 혐오감'이 너무 크게 밀려왔어요. 이렇게 원시적으로 감정 표현하고 싶지 않고 교양인으로 살고 싶은데, 남편이 저의 원시성, 야만성을 건드린 것에 화가 나고, 그것에 내가 반응해 만행(?)을 저지른 것이 더 화가 났어요.

10년 공부 도로아미 타불인 듯한 느낌의 자괴감이 훅 밀려드는 것입니다.

요즘 책 읽고, 글쓰기 하면서 생활이 변화하고, 국선도와 명상호흡으로 일상을 수행하듯 맑고 향기롭게 살고자 노력해 왔는데,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남편이 ‘아베’같이 느껴지며 미워지는 순간이었거든요.

늙어가며 전우애, 형제애(?)로 정답게 살고자 하는데 이렇게 고약한 술버릇으로 우리의 동맹에 타격을 주는 남편의 술버릇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 대신공원 편백나무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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