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온 에어 24

아리아리짱 2019. 6. 13. 06:20

 

제가 일을 다시 시작한 이후로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 컸어요. 그래서 주말이면 가벼운 에세이나 소설을 읽으며 그 중압감을 많이 털어 냈답니다. 특히 로맨스 소설 읽기는 현실을 벗어난 환상의 환타지 세상으로의 도피이자 여행이었어요.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그런류의 첫사랑, 순수한 사랑에 대한 글,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들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데는 딱 이었어요.  

급기야 집근처의 도서관 로맨스 소설을 다 섭렵하고 인근의 다른 도서관까지 진격하는 경지가 되었지요. 그렇게 주말 마다 머리 비우고 무념무상으로 책들을 읽으니 어느 날 딸이 엄마 그렇게 많이 읽었으니 엄마가 로맨스 소설 써보는 것은 어때 하는 것입니다. 로맨스 소설광에서 작가로? 그런데 이거 소설가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제가 작가라면 글의 구성은 어떻게 하고 소재는 우와~! 머리가 아파 오더라고요. 

그 좋아하던 로맨스 소설 읽기도 어느 날부터는 시들해지면서 조금씩 무게감 주는 책으로 접근이 되었어요. 김피디님의 블로그를 통해 소개된 책들을 읽고, 글쓰기의 세계를 접한 이후로는 로맨스 소설의 단순하고 뻔 한 구성들에 흥미가 그다지 당기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자기 계발서나 조금은 생각거리를 주는 책들이 흥미로워지면서 독서 편식이 나아졌어요. 이런 책들이 독서일기 쓰기도 좋고 왠지 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ㅋㅋ 

그렇게 로맨스 소설과는 멀어졌는데 블로그 글쓰기 100일 지나니 저에게 뭔가 기념할 선물을 해 줘야할 것 같았어요. 그것은 완전 무장 해제하고 마음 툭 내려놓은 휴식 같은 선물인 로맨스 소설 읽기였어요.

그래서 선택한 책 <온 에어 24> (박하민/로담)

처음에 1,2,3,4권으로 장편이라 조금 망설였지만 책을 잡고 읽는 동안 완전 몰입의 무아지경으로 빠져 들었어요. 

한 방송사의 어떤 권력에도 타협하지 않는 단 하나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비하인드 24’팀의 PD 서정언은 7년차 서른한 살의 독종중의 독종 피디입니다. 반면 평범함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온 스물아홉 살 2년 차 교양국 피디 김윤은 가늘고 길게, 야망없이 요리프로그램의 피디로 평화스럽게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는 어느 날 술김에 차오른 정의감 탓에 좌천 인사로 ‘비하인드 24’팀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인생의 대 반전이 시작됩니다. 

정치인 엄대진의 정계, 재계, 언론을 망라한 부패와 비리의 연결고리는 너무나 리얼하게 와 닿았어요. 현실에서도 이런 정치인들 충분히 존재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력이 방송과 언론을 장악해 가는 과정이 지난번 MBC사태를 기억나게 하고요. 건설사의 권력과의 결탁으로 비자금 조성을 위한 부실공사과정, 정치인의 국토개발 정보를 이용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울 부동산 투기 등 권력에 기생하여 도덕성을 망각해가는 인간군상의 민낯들을 속속들이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진실과 정의로움으로 언론인의 자세를 유지하려던 사람들은 사고로 위장되어 죽임을 당하고, 그 거대한 권력의 속성을 알기에 두려움에 떨며 변절자로 자청해서 살아남는 언론인들. 그들은 절대 권력에 맞선 정의로운 언론인으로서의 삶에 회의와 두려움으로 자신의 변절에 스스로를 위로하는 당위성을 가집니다.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자신들의 ‘한 방울의 물’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권력에 무릎을 꿇는 것이지요. 

엄대진은 그 절대적 힘으로 자신의 정치 권력욕을 성취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사람 죽이기는 파리 목숨 보다도 쉽게 생각하는 ‘소시오패스(sociopath)같은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일반 군중들 (그가 생각 할 때 아무런 생각과 판단을 하지 못하는 개, 돼지인)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목숨까지 걸면서 진실을 알리려고 애쓰는 참 언론인들의 고군분투! 그들은 ‘한 방울의 물’이 가득 찬 컵의 물을 흘러넘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기꺼이 한 방울의 물이 됩니다. 오랜만에 스트레스 확실히 날렸습니다.

분류가 로맨스 소설이지 이것은 사회소설, 언론소설, 정치소설로 분류해도 될 정도로 구성의 탄탄함과 현실감이 감동으로 와 닿았어요. 마지막 4권 째를 읽을 때는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남아있는 부분이 얇아지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답니다. 우연히 저에게 보낸 선물이 완전 제대로인 것이었죠.  

이 책이 대본화 돼서 드라마 방영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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