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버선발 이야기

아리아리짱 2019. 5. 10. 07:13

<버선발 이야기> (백기완/오마이북)

거리의 투사인 백기완 선생님이 영어와 한자어를 하나도 쓰지 않고 순우리말로 책을 쓰셨다는 소개에 호기심이 생겨 이 책을 구입했어요. 한자어와 영어 없이  책 한 권을  쓰는 것이 가능할까 하고요.

선생님이 늘 한복을 입으시고 희끗한 까치 머리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인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들이 있는 현장에 늘 함께 하신 모습에 저 분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궁금했었요. 늘 민초(민중)들과 함께 하신 선생님은  그 옛날 글을 모르던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 니나(민중)들은 제 뜻을 내둘(표현)할 때 먼 나라 사람들의 낱말을 마땅 쇠(결코) 쓰지 않고 순우리말로 썼을 테니 그 뜻을 따라 니나의 말 그대로 그들의 삶과 생각들을 표현하셨대요. 그러니 우리 낱말이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선생님은 찬찬히 한 글자 한 글자 콩을 심듯이 새겨서 읽어 주기를 바라십니다.

민중은 글을 몰랐기에 기록이 없어. 내가 버선발 이야기를 어머니한테 들은 것처럼, 말로 전해오는 것밖에 없다고. 전 세계를 통틀어 민중사상이나 문화를 기록한 건 거의 없어. 인류 역사는 민중을 죽인 역사야. 이것을 서술적으로 반박하기보다는 진짜 사람이 가져야 할 희망의 실체, 민중의 역사적 실체를 기록하고 싶었어. 민중사상의 원형이 버선발이야. (279쪽)

거지발싸개 조차 가질 수 없는 맨발 벗은발로 살아내야만 하는 머슴의 자식 '버선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름 조차 가질 수 없었던 그 아이는 그냥 버선발이라고 불리는 거죠.

남의 집 머슴을 사는 엄마는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땀 흘려 일을 해도 호박 한 포기 심을 땅 한 뼘 가지지 못하는 머슴살이 신세이며, 밥 한 끼 배불리 먹지 못하고 맨발로 다녀야만 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입니다. 버선발도 일 할 나이가 되면 주인집으로 머슴살이로 들어가야 하는 운명이고요. 니나인 민초의 삶을 들여다보니 선생님의 그동안의 행적들이 이해가 되었어요. 선생님의 참된 하제(희망) '노나메기'를 알게 되었어요.

남의 목숨인 박 땀, 안 간땀, 피땀만 뺏어먹으려 들지 말고 너도 사람이라고 하면 너도나도 다 함께 박땀, 안간 땀, 피땀을 흘리자. 그리하여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벗나래(세상)를 만들자. 너만 목숨이 있다더냐. 이 땅별(지구), 이 온이(인류)가 다 제 목숨이 있고 이 누름(자연)도 제 목숨이 있으니 다 같이 잘살되 올바로 잘 사는 거, 그게 바로 노나메기라네. (212쪽)

선생님은 민중(니나)의 삶과 사상을 우리말로 그린 것은 민중 언어의 복원이자 정신의 복원이라고 하십니다.

"말과 글은 뜻에 머물지 않는다. 정신과 문화를 담고 있다."

"영어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문화적 수단"이라면서, "우리말이 영어에 묻혀 없어지는 것은 인류문화를 죽이는 일"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책 말미에 김병기 님(오마이뉴스 기자)이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버선발은 영웅이 아니다. 버선발은 오랜 길거리 싸움의 상처인 지팡이를 짚으며 지금도 힘겹게 한 시대의 고개를 넘고 있는 백기완이고 우리 민중이다."

처음 한쪽씩 읽어나갈 때는 순 우리말이 외계어에 가까워 읽는 것이 어려웠는데 읽을수록 익숙해지면서 이렇게 사라져 가는 우리말을 찾아내어 글을 쓰시고 생각을 표현하신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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