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결! 결이 고운 고결한 삶!

아리아리짱 2021. 12. 15. 05:55

(홍세화/ 한겨례출판)

홍세화 님의 책 <결:거침에 대하여>를 만나기 전에도 나는 '그 사람은 마음결이 고운 사람이다'라는 표현을 좋아했다. 저자는 고결함 가득한 고운 마음을 가지려면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끝없이 섬세하고 자잘한 수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이 이미 굳어져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는 딱딱함으로 차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결은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을 짓기 위한 여지가 없으니 그야말로 기존 자신의 것만 유지하려 고집하는'꼰대'가 되기 쉽다. 나의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를 가져야만 옳다고 생각되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그 거칢의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사유의 폭과 깊이를 넓힐 수 있는 저자의 글을 통해 나는 어떤 결의 사람인가를 되묻게 된다.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은 고결함을 지향한다. 비단결이 고운 것은 올이 많아 섬세하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사유의 올들에 하나의 올이라도 더 보태거나 수정하여 조금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세상을 인식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대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할 것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로 나를 짓기 위함이다. 그는 '회의하는 자아'다. 회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짓는 자유는 무의미하다. 고쳐 짓거나 새로 지을 게 없는, 이미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유인이 '회의하는 자아'로서 지향하는 고결함은 제로섬 게임이 적용되는 고귀함과 다르다. 고귀함은 '귀함'이 뜻하듯 태생적으로 선택된 사람이거나 남과 경쟁하여 승리한 자의 몫이다. 고귀함은 그 반대편에 비천함을 필요로 하지만, 고결함은 그렇지 않다. 나의 고결함이 너의 비루함을 전제하지 않는다. (34쪽)


고결함은 남과 경쟁하여 승리한 자의 몫이 아니라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의 산물이며 선물이다. 나의 고결함이 너의 고결함을 가로막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고결함으로 이끈다. 설령 결이 다르다 해도 서로가 서로의 곱고 섬세한 결을 느끼며 향유할 수 있다.(35쪽)

보편적 복지와 최저 생활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를 저자는 '불안' 때문이라고 한다. 부의 불균형으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없다면 절망과 나락으로 빠지기 쉽다. 그런 사회는 절대 건강한 사회가 되기 힘들다. 나의 고결함이 너의 고결함을 이끌고, 너의 고결함이 나의 고결함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이 고운, 고결한 사람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을 향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더불어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불안은 인간의 영혼을 잠식한다. 각자가 나를 어떤 존재로 지을 것인가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불안 때문에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이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은 소유에만 관심이 있고 소유물이 무엇이며 얼마나 되는지가 그 사람의 가치를 규정한다. 그래서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인간성을 훼손하는 불안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공적 분배를 통한 보편복지의 확충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 그렇게 더불어 사는 사회, 사회적 연대가 살아 있는 사회, 모두가 소박하게 살지언정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만큼은 지켜주는 사회로 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 환경에서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가꿀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 184쪽)


어제보다 나은 나 자신을 짓기 위해, 고귀함이 아닌 고결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대해 생각에 생각을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