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우리가 인생이라 부른는 것들

아리아리짱 2020. 4. 20. 06:05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인플루엔셜)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정재찬 교수님을 ‘김제동의 톡톡유’ 방송으로 먼저 뵈었습니다. 시를 잊고 퍼석거림 속에 살아갈 즈음, 방송에서 시를 나긋나긋 낭송해주시면서 잊혀져가던 시심(詩心), 시를 향한 마음을 일깨워주셨어요.

저는 중학교 시절의 국어선생님 영향으로 시와 문학의 아름다움에 눈 뜰 수 있었습니다. 나이 들어가며 삶의 무게라는 핑계로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섬세함이 많이 무디어진 자신이 서글펐습니다. 그런 즈음 생경하다고 느낄 만큼 새롭게 시의 존재를 다시 현실로 가져다주신 분이 바로 교수님이신 것입니다.

방송으로 익히 뵙던 교수님을 직접 뵌 적이 있습니다. 딸이 결혼하기 전 ‘톡톡유’ 방송 촬영 방청권을 응모하여 당첨되어 전북대학교에서 촬영할 때 전라도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마침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가수 양희은님도 출연하셔서 새벽 일찍 부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갔었어요. 젊은이들이 아이돌 향하는 마음 이상으로 설렘을 안고 결혼을 앞둔 예비사위와 딸과 함께했던 여행이었어요.

(방청참가 기념 뱃지)

그런데 마침 그날 방송 녹화시의 에피소드를 교수님이 책에 쓰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날의 현장에 있었던 저는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으로 감회가 남다릅니다. 그날 양희은님의 ' 엄마가 딸에게'노래를 듣고 저도 결혼을 앞둔 딸도 함께 눈시울을 적셨던 기억이 납니다.

 

윤성학 시인의 ‘소금시’를 소개하시며 다음 설명을 해주십니다.

 

소금 시                        -윤성학-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

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

 

나는 소금 병정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다

소금 방패를 들고

거친 소금밭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해

한 달을 절어 있었다

 

울지마라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니 (40쪽)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은 눈물의 맛입니다. 그냥 눈물의 성분이 짜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소금은 눈물 없인 얻을 수 없는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장인을 샐러리맨이라고 부를 때, 그때 ‘샐sal’의 라틴어 어원이 바로 소금입니다. 초기 로마시대에는 소금이 화폐 역할을 했다고 하죠. 그래서 관리나 병사의 급료도 소금으로 지급했는데 그 급료를‘살라리움 salarlum’이라고 불렀고, 소금이 화폐로 대체된 뒤에도 지금껏 그 명칭은 살아남아 봉급을 샐러리 salary라 부르고 있습니다. 병사를 뜻하는 영어단어 soldier도 ‘소금을 주다’라는 뜻의 단어saldare에서 비롯된 것이죠.(...) 윤성학 시인의 <소금 시>에 따르면, 내 몸이 바로 그런 소금입니다. 먹고 살려고 내 몸속의 피와 땀과 눈물을 내줍니다. 귀한 소금을 내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귀한 소금을 받아 그걸로 몸을 만듭니다. 이 처절한 순환. 정말 울고 싶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울면 다 녹아버리는 게 소금입니다. 그러니 울지 말고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겁니다. 마치 소금을 봉급으로 받던 로마 병사처럼, 우리는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소금 방패를 들고 싸워 이겨내야 할 소금 병정인 셈입니다. ( 43~44쪽)

 

문정희 시인의 ‘나무학교’와 소개글입니다.

 

나무학교                    -문정희-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문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 놓을 때

사랑한다! 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고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리고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197쪽)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가면 좋겠습니다. 늙음은 젊음의 반대말도 아니고, 젊음이 모자라서 사라진 상태도 아닙니다. 늙음은 젊음을 나이테처럼 감싸 안고 더욱 크고 푸른 나무가 되어 쉴 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는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겁니다. (198쪽)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시작하며’의 글 말씀처럼 가볍고 편하게 읽지만, 무겁게 오래 생각되는 책입니다.

삶의 적재적소에서 시와 연결해 우리의 삶을 해석해 주는 에세이로 쉽게 강의 처럼 풀어주셔서 시와 함께 인생을,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시란 나무를 향해 걷다 보면 어느새 삶과 사랑의 숲 향기에 취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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