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다가오는 말들

아리아리짱 2019. 9. 5. 06:22

 

<다가오는 말들> (은유/어크로스)

저는 카페인에 아주 예민한 체질입니다. 거의 알러지 수준이여요. 커피를 마신 날은 꼬박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잠이 들지 않습니다. 몸은 나른한데 정신을 또렷해서 잠들지 못하는 것이지요. 가끔은 녹차나 홍차도 저의 잠을 방해합니다. 분명 커피의 카페인과는 종류가 다른 카페인이라고 하는데도 그래요.

그래서 제가 음양탕(뜨거운 물 반, 찬 물 반)을 더 애정 하는 것이랍니다.

낮에 차 한 잔 마신 것이 브레이크가 되어 쉬 잠이 들지 않는 밤이었어요. 잠들려고 애쓰다가 그냥 거실의 책상으로 나옵니다.

한 밤 중 그냥 편안한 대화 나누듯 은유 작가님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은유 작가의 글들은 마치 저의 오래된 친구인양 저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공감을 줍니다. 행간 마다 작가님이 출몰하여 조근 조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듭니다.

은유작가를 알게 되어 고맙고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무지하고 자기와 서먹하기에,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쾌감도 크다. 그렇게 마음을 다 쏟는 태도로 삶을 기록 할 때라야 신체에 닿는 언어를 낳고 그런 언어만이 타자에게 전해진다.(39쪽)

이 절묘한 표현이 저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과 이런 부분이 나에게 있었나 라는 것을 자주 발견합니다. 글쓰기 작업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 탐구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글쓰기는 창작이나 발명이라기보다 발견에 가깝다. (75쪽)

은유작가는 크든 작든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힘이 있어요.

나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 가사노동, 양육노동, 집필 노동으로 꽉 채워진 일상. 내 인생에 김치노동까지 추가되면 끝장이라는 비장함으로 안 배우고 버텨왔다.(106쪽) 

작가님도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는 이 말에 저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는 걸 작가님은 아실까요? 저도 김치를 담글 줄 모릅니다. 워낙에 ‘요알못’ 인데다 책하고 친한 척하느라 크게 관심이 가지 않더라고요.

친정엄마 살아계실 땐 ‘엄마표 김치’로 연명했는데 가신지 10년 되니 작가님 표현대로 ‘김치난민’이 되었네요. 맛있게 먹는 사위와 손주들만 봐도 뿌듯해 하시며 매번 김치를 만들어 주시면 가져다 먹는 것도 귀찮아하며 먹어주는 것에 생색을 내었는데 참 한 참 모자란 딸이었어요.

찬바람 부는 김장철이 되면 엄마와 함께 엄마의 김치가 제일 그립고 아쉽습니다.

한 여성이 소위 바깥일을 하려면 다른 여성의 돌봄 노동이 필요하듯이, 내가 김치 담그기에 해방되자면 누군가의 고단한 노역의 산물인 김치를 먹게 된다. 얼마나 손끝이 얼얼하도록 마늘을 까고 생강을 다지고 배추를 씻고 절이고 버무렸을까. ‘엄마표 김치’라는 말이 그리운 말에서 징그러운 말이 되어간다. 엄마의 자기희생이 강요된 말, 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자들이 계속 받아먹기를 염원하는 말이다.(...)

어머니가 해주신 밥과 김치 먹고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가시화 되지 않는 이상한 노동. 피와 살로 스며서 똥으로 나가버리는 엄마의 땀. 부불노동(unpaid work)으로서 가사노동의 불꽃인 김장. (107쪽)

김장과 김치를 통해 이렇게 지난한 엄마의 노동까지 꿰뚫는 예리한 작가님의 시선 덕분에 또 하나의 생각이 열립니다. ‘삶의 결을 섬세하게 살피는 관찰자가 될 때 우린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 된다.’라는 작가님 말처럼 작가의 힘은 이렇게 대단한 것입니다.

제가 넙죽 받아먹을 때는 ‘엄마표 김치’가 다정함과 그리움이었는데, 시집간 딸에게서 ‘엄마표 김치’를 들을 때는 자기희생이 강요 된 징그러운 말이 됨을 실감합니다. 뭐 어쩌겠어요! 궁하면 통한다고 김치난민으로 또 그렇게 엄마표 김치 없이도 살아가지는걸요.

이렇게 은유작가와의 대화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다시 잠자리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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