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아리아리짱 2019. 8. 20. 06:37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오찬호/블랙피쉬) 

작가 오찬호는 사회학 박사이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의를 합니다.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회가 상식적이어야 한다고 믿고 인류의 평등을 방해하는 고정관념을 발견하고 파괴하는 글쓰기를 주로 한다 라고 표지에 저자소개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낮 뜨거워질 순간을 잘 모른다. 남은 괜찮지 않은데 당당하다.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뜨거운 심장은 온데간데없다. 자신의 발버둥에 아파하는 누구의 허우적거림에는 냉정하다. 쓸데없는 열정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무례한 차가움으로 주변을 내친다. 서로가 칼을 겨누고 찌르니 ‘하나도 안 괜찮은’사람만 늘어간다. 

나는 이런 모습을 온도 조절 기능을 상실한 사회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제대로 부끄러워 할 줄 몰라 감정의 온도 조절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의 촌극을 모았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이상하게 오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마주하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지만 무대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시작될 수 있다. 시민이 되기 위해 언제 그리고 무엇에 얼굴이 화끈거려야 하는지, 이를 말하고자 한다.(프롤로그 9~10)

 

작가는 아파트에서 위층의 소음에 대해 조심스럽게 작은 선물을 가지고 시끄러움을 호소하려 대화를 시도 했다가 위집 사람의 ‘내 집에서 걷는 것도 내 마음 대로 못하느냐’는 대답에 무색한 채 되돌아 왔던 경험을 얘기 합니다.

층간 소음은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막무가내 철학을 가진 부끄러운 사람들 때문에 발생합니다. 아래 층 사람에 대한 배려가 무딘 사람은 자신의 사적재산권에 근거한 내 것 내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지요.

층간소음으로 사회면을 장식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닌 이유인 것이지요. 

한국의 배달 문화는 전 세계의 부러움을 갖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신속배달’, ‘몇 분 내 배달 보장’이란 단어 조합은 누군가가-특히 청소년들이- 죽을 수 있다는 뜻이기에 섬뜩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배달부의 연이은 죽음을 취재한 방송에서 한 고등학생이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방학 끝나면 오토바이 배달하다가 한명씩 죽어요.” 

저자는 신속배달은 사람이 죽을 확률이 높은 시스템을 애용하는 우리들의 민낯이며 이에 얼굴 붉어지는 사람도 없는 것은 그 대단한 소비자 ‘권리’때문이 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은 후 빠른 배달 시스템이 죽음을 불러 올 수 있는 것이라는 충격과 소비자가 조금의 여유를 가지면 배달부의 안전이 조금 더 보장 될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저의 학원은 경사진 아파트의 상가에 앞쪽은 바깥을 향하고 뒤쪽은 지하인 형태의 2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2층에 6 개의 학원이 마주보고 있는데 복도 끝의 창문이 유일한 환기구가 되는 셈입니다. 그 창문에 입구에 있는 다른 학원에서 에어컨의 실외기를 설치 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아니 어떻게 공용의 창문에다가 실외기를 설치할 수 있나’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이미 설치한 것을 다른 곳에 옮기라고 얘기 하는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지고, 감정대립이 생기는 것도 피하고 싶었어요. 속으로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만 불편한 것이 아니니 ‘누군가가 나서서 얘기 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려 했어요. 

하루가 지나고 이틀 째 옆에 다른 학원장이 찾아와서 ‘이것은 아니다 우리가 함께 얘기를 하고 옮겨달라고 하자’라고 했어요. 그제서 야 제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조금 부끄러워 졌어요. 

함께 가서 설치한 남자 학원장에게 얘기하니 표정이 뜨악하더라고요. 뚜렷한 답도 주지 않고 2주일이 지나도 그대로 이길 래 두 번째 다시 가서 말을 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있을 때 마침 그 창문이 유일하게 외부로 통하는 곳이라 화재 비상시 소방 대피 시설인 창문이라 법적으로 아무 것도 설치 못하게 되어 있다고 소방법을 아는 분이 얘기를 해서 상가관리소를 통하여 철거하도록 얘기했습니다. 

조금 신경 쓰이고 귀찮다고 온전히 나만의 일이 아니라고 누군가가 하겠지 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면 모두에게 큰 손실을 줄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고 또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보다 발전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음을 한여름 바람을 가로막는 실외기를 보며 절실히 느꼈습니다.  

나의 편리만을 위해 다수에게 불편함과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또 어떤 부당함에 침묵이 아닌 부당함을 자각하도록 외침이 있어야 보다 나은 방향으로 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작가가 서문에 밝힌 다음의 글을 한 번 더 되새겨봅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나‘부터 변하자.

좋은 사회를 희망한다면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이지 않겠는가. 행복한 ‘내일’을 원한다면, 자신이 다른 이의 존엄성을 뭉개고 있는 ‘오늘’부터 발견하길 바란다.

부끄러움을 제대로 느끼는 사람은 성장한다. 무결점의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과오를 줄여 나가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프롤로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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