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 강의감사

글쓰기의 최전선

아리아리짱 2019. 6. 28. 06:34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메멘토)

은유작가의 독학으로 배운 날 것 같은 필력, 생활에서 온 몸으로 부딪혀 체득한 살아있는 글들에 울림이 큽니다.  책을 읽어가면 많은 문장이 저를 두드려 깨웁니다. 작가가 내어 준 길을 또 나아갑니다. 서두에 작가는 ‘나는 왜 쓰는가’라고 자문하며 다음의 말을 합니다.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외적 원인에 휘말리고 동요할 때, 글을 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 (중략)

크고 작은 일상의 사건들을 글로 푹푹 삶아내면서 삶의 일부로 감쌀 수 있었다. 어렴풋이 알아갔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 (위의 책 9쪽) 

우리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23쪽)

'왜' 독서와 함께 글쓰기가 이루어져야함도 다음의 홍세화님의 글을 인용하며 강조합니다.

‘독서를 품고 있는 글쓰기’는 성찰과 솔직함이라는 조건 아래 인간의 ‘결’을 섬세하면서 풍요롭게 한다. 그 섬세함과 풍요로움이 ‘삶에 대한 옹호’와 만나는 것은 당연하다. - 홍세화- 

그 섬세하고 풍요로움으로 삶에 대한 옹호의 글들이 타인에 대한 기여로 이어지는 것이고요. 그것이 함께 하는 세상을 따뜻하게 느끼게 해주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글쓰기를 하면 ‘세상이 온통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은 아닙니다. 힘든 것은 힘들다고 얘기하며 털어내고, 세밀하게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 노력하고 그 여백을 즐기려 하는 애씀이 늘어난 것이지요. 

“우리가 충분히 배우고 우리의 눈과 귀를 충분히 연 경우 언제든 우리의 영혼은 더욱 유연하고 우아하게 된다.” (니체) 

저자는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글쓰기 강좌를 하면서 작가는 ‘어떤 글을 쓸 것인가’를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며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고 합니다.  

니체의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를 읽은 한 학인이 ‘니체의 문장 사이사이에 꽃을 달아 주고 싶어요’ 라고 합니다. 니체에 대한 끌림이 커집니다. 작가가 저를 니체로 이끕니다. 그렇게 나는 은유작가의 미래의 벗이 되는 예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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