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김치 난민이다. 양가 어머님들이 살아계실 적에는 두 분이 번갈아 공수해 주시는 김치를 미처 다 먹어내지 못할 정도로 풍성했다. 식당을 운영해서 자식 여섯을 다 대학 공부 시킨 시어머님은 음식 솜씨가 탁월하셨다. 어머니는 넷째 며느리가 살림에는 젬병인 것을 일찍이 알아차리셨다. 그래도 어여삐 여겨주시어 기력이 많이 떨어진 노년에도 직접 김치를 담가주시곤 했다. 친정어머니는 젓갈을 듬뿍 넣은 경상도식 김치를 담그셨다. 맏사위가 맛있게 잘 먹는다고 김치 떨어질 새 없이 만들어 주시곤 했다. 두 분의 김치 보살핌으로 그렇게 아쉬움 없이 살았다. 두 분이 연로하셔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가신 후에는 나는 김치 미아가 되었다. 김치 난민이 된 것이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입 맛에 맞는 김치를 발견하여 주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