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감사합니다. 194

100세 인생시대

노년의 삶에 대한 생각들이 많은 요즘입니다. 오래전에 영화 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아프리카 수단에서의 사랑과 봉사 생활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어요. 나도 의료 지식이 있으면 은퇴 후 봉사 활동이 쉬울 텐데 라는 생각을 했죠. 체력이 약했던 저는 건강과 체질 등에 관심이 많아서 늘 의료 지식이 아쉽고 궁금했어요. 의대 진학은 불가능하고 간호조무사 공부도 1년은 해야 해서 현재 하는 일과 병행하기 어렵고, 그나마 요양 보호사 공부는 짧은 시간에 약간의 의료 상식을 배울 수 있는 듯했어요. 그리고 100세 시대에 인생 2 모작, 3 모작 시대라고 하니 인생 후반기에 봉사나 또 다른 직업으로의 가능성도 있어서 부지런한 친구 샘의 권유로 함께 공부했답니다. 요양보호사는 의무 수업시간과 실습시간을 해야만 시험을 치를 ..

아빠와 아들의 동행

아들은 서너 달에 한 번씩 집에 옵니다. 포항에서 공부와 이은 직장 생활로 15년째 객지 생활입니다. 아들은 집에 올 때마다 주문 사항이 두 개 있어요. 늦잠 실컷 자게 절대 깨우지 말 것. 산(대신 공원)에 가자고 하지 말 것.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은 주말 등산으로 대신 공원 숲을 찾았는데, 아들은 산에 오르기를 아주 귀찮아했어요. 그런 아들을 꾀어 같이 오르려고 남편은 공원 입구 계단에서는 가위. 바위. 보 놀이로 계단 오르기를 시도했고, 중간에 있는 휴게소까지 가면 아이스크림 사주기 등으로 달래 가며 등산을 했었어요. 어릴 때도 싫어하더니 커서도 등산은 별로 내키지 않나 봅니다. 아들은 몸을 많이 움직이는 배드민턴과 야구는 아주 좋아 하지만, 이렇게 산에 오르는 것은 크게 운동 같은 느낌..

늘 고마운 그대 (3)

작년(2018년) 3월 이맘때, 평소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던 건강한 남편이 열이 나면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어요. 동네 병원에 가서 감기약을 처방 받아서 먹고 하루 지났는데도 여전히 열이 내리지 않았어요. 저는 그 때 100세인생의 노후에, 일이나 봉사로 도움이 될 듯하여 친구샘이랑 요양보호사 시험 준비중이었어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계속 아프면 그 날이 일요일인지라 삼육병원이라도 가라고 하며 공부하러 갔습니다. 딸은 당시에 예비사위와 데이트 하며 해운대에서 시간을 보내던중 아무래도 아빠가 심상찮은 생각에, 집으로 와서 예비사위와 함께아빠를 모시고 병원 응급실로 갔던 것입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독감 검사를 해도 음성이고 열은 내리지 않았던거죠. 그러자 딸이 아빠가 며칠전 부터 발음이 약간 어눌 한 ..

늘 고마운 그대 (2)

그렇게 둘째를 낳고 남편은 직장 생활 열심히 하고, 저 또한 전업주부로 아이들 육아를 하면서 책읽기와 영어공부를 계속 했습니다. 증권시장의 활황으로 연이은 야근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의 곳곳으로 다니며 여행을 함께 하며, 많이 보여주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며 야구장과 축구장도 부지런히 데리고 다니는 자상한 아빠였어요. 당시 증권시장의 호황으로 증권사 직원들은 우리사주 제도로 다들 큰 부를 이룰 수 있는 행운의 시기여서, 다른 직장인들과 비교해서 내집마련도 쉬웠으며, 경제적 안정을 빨리 찾았어요. 그렇게 부지런하고 듬직한 남편과 무럭무럭 잘크는 아이들을 키우며 이런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들이 계속 되리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IMF 즈음 남편은 본의 아니게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늘 고마운 그대 (1)

대신공원 입구의 수선화 남편은 작년 이 맘때 큰 수술을 했어요. 그 이후 저는 남편에 대한 소중함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 휴대폰에 '늘 고마운 그대'로 남편이 저장 되었구요. 남편은 5남1녀중 다섯번째로 마음이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아들이었어요. 작은 식당을 운영하시며 위의 형들과누나를 대학 공부 시키시는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 보여 자청 해서 상고 진학을 했답니다. 당시 부산상고 갈 실력이면 웬만한 일반 대학을 갈 수 있는 우수한 실력인데 빨리 사회 생활을 시작 해서 어머니 짐을 덜어 주고 싶었답니다. 남편은 졸업 후 증권회사 근무를 시작하며, 직장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 된 후 대학준비를 시작했고, 그 입시학원에서 저와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둘 다 직장생활과 공부를 함께 해야하는 여유 없는 일상으로,..

종교다원주의(pluralism)

(사위가 우리집 첫 방문 때 선물한 꽃바구니) 저는 불교 학생회,청년회를 다니며 신앙 생활을 했는데, 저의 힘겨웠던 청춘인 20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마음을 갈고 닦아 깨침으로 나아가는 수행 생활이, 그 길이 너무 멀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나약함으로 바라고 갈구하는 것이 많은 나는 그냥 절대자인 신에 기대어 믿고 따르는 서양종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리고 주변에 교회나 성당 다니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는지라 자연히 교회와 성당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하고 무지한 저의 입장에서 교회는 그 맹목적인 뜨거움이, 그리고 기업화되어가는 그 상업성이 쉽게 동화 되기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과 희생이 과연 어디서 저렇게 나올 수 있나 라는 궁금증에 친구의 성당을 따라갔..

나의 영어사 (3)

한편 자격증을 획득한 젊은 친구들은 여행사에 주로 해외 인솔자로 쉽게 바로 취직이 되었는데, 40대 주부인 저는갈 곳이 없더라구요. 그런즈음 함께 공부 했던 같은 또래이자 주부셨던 분이 어린이 영어 학원에 취직하여 다니시면서, 일 해 볼것을 권하셨어요. 그분은 제 '멘토'가 되신거죠. 이전에 아이들 영어에 실질적 도움이 될까 정보를 알아 볼겸, 영어 전문 학습지에 잠깐 다녀본 경험이 있긴 했지만, 어린이 영어 학원에 면접을 보러 갔더니 바로 다음주 부터 출근 하라는 것입니다. 당시는 어린이 영어 학원이 엄청 붐인 시절 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저는 영어와 학생들과의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 했습니다. 영어라면 피하고 싶은 제가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는것이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활자 중독인 저는 가르치..

나의 영어사(2)

그렇게 막상 상고로 진학하니 공부에 대한 의욕이 식어서, 첫달 시험을 치르니 세상에!! 60여명 학급에서 46등을 한 것입니다. 중학교 3학년을 전교 8등으로 졸업했는데 말입니다. 우리학교는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는 부산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 모인 학교라서 안이하게 있다가는 꼴찌 하기 십상 이었던거죠. 그래서 정신 차리고 공부를 다시 집중해서 했지만, 영어는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 였습니다. 상고 졸업과 동시에 당시 금융권 최고의 급여와 복지를 제공하는 한국 투자 신탁을 입사했습니다. 입사해서 2년을 근무하니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에, 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1년 준비 해서, 가고 싶은 과는 국문과였지만, 회사생활과 병행 하기에는 회계학과가 쉬울 듯해서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대학 과정은 거의가 고등..

나의 영어사 (1)

나의 영어에 대한 애증의 흑역사를 말씀 드리자면 저의 중학교 1학년 때 첫영어 수업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는 중학교부터 영어를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우는 시절 이어서 중학교 입학전 겨우 알파벳을 읽고, 쓰는 정도로만 해도 나름 선행학습이었던 시절이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첫 영어 수업시간 을 맞이 했는데 영어선생님이 칠판에 크게 YOU 를 쓰시더니 저에게 읽어보라고 질문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자신있게, "와이 ,오우, 유" 라고 크게 읽었습니다. 알파벳은 겨우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랬더니 선생님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시면서 저보고 앉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내가 잘못 읽었나 하고 의아했습니다. 선생님은 이어서 다른 학생에게 읽어 보라고 하셨고, 그 친구가"유~"라고 읽자, 표정이 밝아지면서 "..

국선도와 봄소식

저는 일 주일에 2번 국선도 수련을 합니다. 국선도는 태권도와 같이 우리나라 고유의 심신수행법인데, 신라의 화랑도에서 기본으로 닦던 수행법라고 합니다. 국선도는 요가 보다는 동작이 따라 하기가 쉽고, 복식 호흡과 명상으로 우리 몸의 자세를 바로 잡고, 기와 혈의순환을 도와 주는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해 주는 운동인 것 같아요. 화랑도에서 충.효를 강조한 민족의 정신이 깃든 운동이라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강제로 맥이 끊어 졌는데, 복원 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몇년 동안 요가를 혼자서 집에서 동영상을 보면서 하곤 했지만, 좀 더 체계적으로 운동을 하려고 국선도를 시작 했어요. 본원 수련장이 집에서 너무 멀어서,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사범님의 아파트 거실에서 수련생 몇명이서 ..